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20

4장-3. 균열의 밤

by 공인멘토

1. 시스템 잔여 복구 루틴


황혼이 도시를 파란 잿빛으로 덮을 무렵,
평점 엔진은 슬립모드에서 깨어나 마지막 자율 복구를 시도했다.
중앙 서버 모니터엔 무수한 에러 코드가 번갈아 떴다.

WARN 22:14: kernel watchdog reset → FAILED

FATAL 22:17: trust_token not found

INFO 22:19: fallback route: SecUnit-A

신뢰 토큰이 없으므로,
엔진은 오프라인 보안 팀 A―즉, 감정 없는 무인 드론 집행부―에게
‘질서 재개(Recovery)’ 명령을 자동 설정했다.



2. 보안 팀 A 쿠데타


22 : 30, 광장 상공.
검은 무인 집행 드론 15기가 삼각 편대를 이뤘다.
LED 눈이 붉게 빛나자 공기는 짧게 금속 냄새를 품었다.

“복구 코드 beta-cut 재개.
감정 파동 양성 시민 발견 시 일시 격리.”

에필로그를 앞당기려는 **‘자동 쿠데타’**였다.
도시 아래층의 시민 위원회—듣기 포럼을 준비하던 60여 명—
빛줄기가 그들 머리 위를 스캔하자, 살갗이 차가워졌다.



3. 광장 소등 / 감정 태그 재가동


드론이 전광판 전력선을 차단,
광장 전체가 암흑에 잠겼다.
밤이었지만, 빛이 완전히 꺼진 건 돔 역사상 처음이었다.

어둠 속에서 손목 밴드가 다시 붉게 켜졌다.
비인가 감정태그가 자동 재가동된 것이다.
시민들 손목엔 차례로 경고 코드가 점멸했다.

Y-Δ : 공포
R-Ω : 분노
O-Σ : 불안

숫자는 없었지만, 색과 기호가 사람들의 숨을 죄기 시작했다.



4. 숨 결사의 형성


광장 한복판, 둥근 의자를 이뤘던 시민들이
서로 손목을 맞대고 확인했다—
모두가 ‘경고’ 상태라면, 경고는 무의미하다.

노란 작업복 남자가 속삭였다.
“숫자를 버렸는데, 색이 또 우리를 나누네요.”
제빵사 여성이 손전등 앱을 켜서 바닥에 비췄다.
“색도 꺼 버려요. 서로를 비춥시다.”

핸드폰, 휴대 배터리, 심지어 가게 간판에서 떼 온 소형 램프까지.
사람들이 임시 조명을 바닥에 모아 원형 빛을 만들었다.
누군가 이름을 붙였다. “숨 결사”—숫자·태그 대신 숨으로 연대하겠다는 뜻.



5. 가온·이레의 공조



22 : 44, 심문청 비상 통신로.
이레는 쉬지 않고 패널명령을 입력했지만
드론 프로토콜은 ‘관리자 무효화’ 로그를 반환했다.
그때 가온의 음성 메시지가 암호 채널로 들어왔다.

“당신 권한이 아니라 ‘질문 프로토콜’로 접근하십시오.
감정 파동을 차단할 명령 대신,
**‘이유를 묻는 명령’**을 올리세요.”

이레가 고개를 들었다.
‘질문 프로토콜’—30일 포럼을 위해 새로 만든, 단 하나 남은 백도어.
그는 즉시 패널에 명령을 입력했다.

override> ASK_MODE /target:SecUnit-A /query:"왜 격리하는가?"

드론 논리 MCU가 순식간에 질문 루틴에 묶였다.
“QUERY… 이유 없음.”
자기모순이 발동된 드론들은 비행 궤도가 흔들리더니,
LED가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며 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6. 밤공기의 균열


광장 위 드론 소음이 사라지고
감정 태그 LED가 꺼졌다.
시민들은 여전히 원형 빛 안에 모여 있었지만,
이제 그 빛은 두려움이 아니라 숨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노인이 끌려가던 터널 입구 쪽에서
낯익은 얼굴—소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저는 고개를 돌렸어요… 죄송합니다.”

둥근 의자 사람들 사이로 짧은 정적.
제빵사 여성이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우린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용서할 거야.”

감정 지수는 V=0.75를 찍었다가,
다시 천천히 0.35로 내려갔다.
숫자가 숨을 벌하진 못했고,
숨이 숫자를 이겨내고 있었다.

“질서는 밤에 균열 났고,
숨은 그 틈으로 새어 나와 별빛과 섞였다.”

루세온의 첫‘숫자 없는 밤’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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