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4. 무너진 장신구
자정이 가까운 심문청 지하.
이레·가온, 그리고 시민 대표로 뽑힌 노 교육자 “라이샤”가
센서를 꺼버린 비상 통로를 따라 코어룸으로 내려갔다.
드론들은 “ASK MODE”에 묶여 감시만 하고 있을 뿐,
저지하지 않았다.
철제 방폭문 앞—
이레는 주머니에서 집행관 은 라펠을 꺼내 두 손으로 쥐었다.
반짝이던 금속이 그의 체온으로 서서히 흐려졌다.
가온: “라펠이 없으면 문이 안 열립니다.”
이레: “열기는 해요. 다만, 나를 ‘집행관’으로 인식하지 못하겠죠.”
그는 라펠의 접촉 칩을 잡고 딱 하고 꺾어 버렸다.
금속이 찢기는 음이 조용한 통로에 울렸다.
이레는 반쪽으로 부러진 라펠을 가온에게 건넸다.
“질서가 아니라, 질문이 열게 하죠.”
라펠을 잃자, 이레의 신분 태그가 서버 기록에서 재귀적으로 삭제됐다.
모니터에 로그가 떴다.
AUTHORITY TOKEN 0… failed
USER ROLE — null
방폭문 스캐너에 손바닥을 올리자
기계음이 낮게 떨렸다.
“권한 없음—사유: undefined.”
가온이 앞에 나섰다.
배낭에서 드론 ASK MODE 키 파일과 라펠 파편을 병합한
임시 토큰을 NFC로 작동시켰다.
**“질문: 왜 열지 않는가?”**라는 프롬프트가 띄워졌다.
방폭문은 1초간 딜레이 후 천천히 열렸다.
질문 프로토콜이 장신구보다 우선권을 얻은 순간이었다.
코어룸엔 지름 4 m 유리 실린더가 두 개.
상단엔 중앙 AI 메인 노드, 하단엔 감정 지수 보정 모듈이 회전하고 있었다.
모듈 측면 HMI(인간-기계 인터페이스)에는 붉은 에러 메시지.
cut_overflow() blocked: human override
queue length: 0
라이샤가 숨을 삼켰다.
“우리가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합니까?”
가온이 모듈 옆 패널을 열고
시리얼 케이블을 꽂았다.
화면에 커서가 깜빡였다.
override> shutdown --graceful 1800
override> broadcast "도시는 30분간 질문만 수신합니다."
엔터를 치자, 코어 모듈이 처음으로 느리게 멈추기 시작했다.
휘파람 비슷한 감속음이 바닥으로 잦아들었다.
이레는 가온이 커맨드를 입력하는 동안
손바닥에 남은 라펠 파편을 내려다봤다.
그 금속은 아까보다 더 빠르게 식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 고리를 정의라고 믿었지요.”
그는 파편을 바닥에 내려놓고
발끝으로 밀어 실린더 아래 균열 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털썩—
코어룸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나는 질문으로 남겠습니다.”
도시 전역 전광판이 검은 화면을 잠시 깜빡인 뒤
낯선 문장을 띄웠다.
“30 min query-only mode → 모든 질문, 모든 귀.”
손목 장치도 마찬가지였다.
숫자·색·태그가 사라지고
작은 마이크 아이콘 하나만 떠올랐다.
누구나 눌러 음성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감점 없이.
시민들은 처음엔 조용했지만,
곧 한 명, 두 명…
“왜 항상 웃어야 했나요?”
“이 숫자는 누가 만들었죠?”
“그날, 노인을 왜 끌고 갔습니까?”
수십, 수백 개 질문이 서버 로그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코어룸 모니터엔 질문 큐가 실시간으로 쌓였지만
처리 지연 경고는 뜨지 않았다.
AI는 ‘답해야 할’ 알고리즘이 아니라
‘듣는’ 모드로만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어 모듈 회전이 완전히 멈췄다.
액정판에 타이머가 천천히 내려갔다.
TIME UNTIL FULL STOP 00:29:47
가온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돔 위로 희미한 별빛과 내부 조명이 교차하며
투명 패널을 통해 실린더 마개처럼 비쳤다.
라이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질문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군요.”
이레는 눈을 감고,
처음으로 숫자가 아닌 자신만의 맥박을 들었다—
그 박동이 코어룸의 감속음과
이상하게도 같은 템포로 뛰고 있었다.
“질서는 멈췄고,
질문은 심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