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23

에필로그-1. 평점 시스템 일시 중지

by 공인멘토


1. 00 : 00 — 일시 정지 선언


자정을 알리는 벨 대신, 전광판 중앙에 한 줄 문장이 떴다.

“정의 평점 엔진, 무기한 Sleep 모드.”

배경은 비어 있었고, 글자엔 그 어떤 색인도 없었다.
도시 전체가 한순간, 소리를 꺼 놓은 영화처럼 멈춰 섰다.



2. 손목 장치의 침묵


수백 만 개 손목 밴드가 동시에 재부팅되며,
숫자 창이 ‘――’로 바뀌었다.
곧이어 작은 톱니바퀴 아이콘이 딱! 하고 멈췄다.
더 이상 감점 경고도, 가산 알림도—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학생 네모가 웃으며 물었다.
“이제 숙제 안 해도 되나요?”
제빵사 마이라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숙제는 하되, 숫자 대신 맛으로 점수받으면 어때?”



3. 서버실의 마지막 행(行)


심문청 코어룸 모니터에 남은 로그는 한 줄.

sleep(∞) # wait for human wake()

관리자 권한도, 재가동 타이머도 입력되지 않았다.
이레는 키보드를 바라보다 천천히 덮었다.
“잠들 때까지 지켜봤지만… 이제 깨울 책임은 시민에게 있겠지.”



4. 도시 라디오의 첫 음악


평점 지수를 방송하던 AM 주파수 1180 kHz.
정지 선언 40분 뒤, 정체 모를 클래식 기타 선율이 흘러나왔다—
도시에 음악 방송이 나온 건 돔 완공 이후 처음.

길가를 걷던 리안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 노래, 제목 몰라도 되는 거죠?”
맞은편 칼릭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른다고 깎을 점수가 없으니까.”



5. 휴지기의 약속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둥근 의자를 다시 펼쳤다.
이번엔 가운데에 작은 보드가 세워졌다.
칠판 위, 분필로 굵게 적힌 글씨.

“듣기 포럼 Day-1 — ‘먼저 묻고, 끝까지 듣는다.’”

점수 칸은 빈칸으로 남겨 두었다.
라이샤가 칠판 아래 덧붙였다.

“평점 엔진이 깰 때—우리는 숫자가 아닌 말을 건넬 준비를 한다.”



6. 도시의 첫새벽 알람


돔 유리패널이 새벽빛을 받아 연분홍으로 물들 때,
전광판 시계가 천천히 06 : 00을 가리켰다.
그 옆엔 작은 아이콘 하나—귀를 형상화한 그림.

“오늘도 듣겠습니다.”

숫자가 사라진 첫날,
루세온은 알람이 아닌 울림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정의는 잠들었다.
그러나 숨은 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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