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2. 판단 없는 듣기 모임
아침 9 시.
광장 바닥의 흰 안내선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 위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자를 끌어다 둥글게 배치했다.
목적은 단순하다. “듣기 전용 2시간”.
마이크도 사회자도 없다. 발언권은 손을 들고,
발언 중엔 그 어떤 질문도 판단도 허용하지 않는다.
앞치마 끈을 고쳐 맨 마이라가 의자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가슴에 얹었다.
“어제까지 저는 미소로 빵을 팔았습니다.
손님이 웃지 않으면 점수가 떨어지니까요.
오늘은… 그냥 묻고 싶습니다.
맛이 어땠는지, 웃지 않아도 괜찮으니 말해 주세요.”
그녀는 앉았다.
아무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규칙이니까.
그 대신 열 사람이 눈을 맞추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라가 조용히 숨을 토했다.
키가 작은 네모가 의자 위로 올라섰다.
목소리는 얇았지만, 마이크가 없어도 울렸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외우면 점수를 줬어요.
근데 저는 그 책이 왜 재밌는지 말하고 싶었어요.
오늘은 점수 없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문단을 읽어도 될까요?”
네모는 주머니에서 낡은 소설책을 펴고
반 쪽이 찢어진 페이지를 따라 더듬더듬 읽었다.
‘바람은 숫자를 모른다’—한 줄이 광장에 남았다.
2시간 내내 열두 사람이 차례로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웃음을,
누군가는 평생 억눌린 분노를—
누구도 맞장구치지 않았고,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발언이 끝날 때마다
모두 같이 5초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 5초가 **“듣기 완료”**를 의미했다.
숫자도 박수도 정답도 없는 인증 방식.
모임이 끝나자 열세 살 학생 둘이
휴대폰으로 음성 기록을 편집했다.
파일명 앞에 ‘score00-’을 붙였다.
“우리는 점수 없는 기록팀이에요.”
그들이 웃자, 주변 어른들이 따라 웃었다—
누구도 감점되지 않았다.
해 질 녘, 편집된 오디오가
‘숨 포럼’ 공용 채널에 업로드됐다.
조회 12 분 만에 댓글 137개가 달렸다.
모두 “들었다.” 뿐이었다.
평점도 이모티콘도 없었다.
가온은 광장 외곽에 앉아 노트에 한 줄을 더했다.
“듣기는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숨은, 귀만으로도 살아났다.”
그리고 조용히 노트를 닫았다.
내일 아침에도 광장엔 둥근 의자가 놓일 예정이었다.
“숫자가 없어지자, 말이 자리를 찾았다.
판단 없는 귀는 정의의 첫 맥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