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5. 숨의 울림
타이머가 00 : 00 : 00으로 도달하자, 코어룸 유리 실린더는 다시 천천히 회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감정 보정 모듈은 이전과 다른 모드를 택했다.
패널 로그:
resume → passive listen
scoreEngine → OFF
queryBuffer → 2 341 건
엔진은 숫자를 재계산하지 않고, “질문 목록”만 메모리에 쌓기 시작했다.
질문의 수는 분당 300건을 넘어섰지만,
시스템은 단 한 번도 “감정 경보”를 띄우지 않았다.
오전 07 : 00—광장.
어젯밤 둥근 의자에 모였던 사람들은 스스로 ‘아침 회의’를 조직했다.
정장 차림 회사원 “칼릭”, 제빵사 여성 “마이라”, 노란 작업복 남자 “리안”, 그리고 소년 “네모”까지.
전광판 대신 임시 스피커를 설치해, 밤새 서버에 기록된 질문을 번갈아 읽었다.
“우리가 웃고 싶을 때 웃는 건, 누가 허락합니까?” —리안
“평점이 없으면, 공부는 어떻게 평가받나요?” —네모
“나는 오늘, 두려움을 숫자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마이라
질문마다 누군가 손을 들고 자신의 경험을 짧게 나눴다.
말은 서툴렀지만, 끊기지 않았다.
누구도 “정답”을 내지 않았지만,
서로 눈을 맞춘 채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 자체가 답변이 되었다.
광장 동편, 노인이 끌려갔던 투명 터널 앞.
둥근 의자 모임은 작은 꽃다발과 투명 카드에 글을 적어 그 앞에 놓았다.
카드에는 평점 대신 손글씨.
“괜찮다고 해주셔서, 이제 우리가 괜찮다고 말하려 합니다.”
터널 내부로 꽃 그림자가 드리웠다.
센서가 감정 지수 V=0.48을 찍었지만, 아무 프로토콜도 호출되지 않았다.
심문청 회의홀.
임시 시민 위원회가 국문서 관리 서버에 접속,
에단의 영상·음성·문서를 **“루세온 공식 기록물”**로 등록 승인했다.
메타데이터:
public=true
access: 시민 전체
tag: 역사 / 숨 / 정의
등록 직후, 전역 도서 네트워크에 ‘에단 아카이브’ 섹션이 생성됐다.
4 분 만에 조회 수 10 874.
도시 포럼 메인 프레임이 첫 “정책 제안” 게시를 열었다.
칼릭이 올린 항목:
“매년 오늘, 평점 엔진을 24시간 정지하고 ‘듣기 모임’을 열자—가칭 숨의 날.”
30분 만에 찬성 5 201 표, 반대 137 표.
서버는 과반을 넘기자 자동으로 “정식 안건” 플래그를 달았다.
표시등이 녹색으로 바뀌는 순간, 광장에서 큰 박수가 터졌다.
코어룸.
가온이 패널을 내려다보았다.
질문 버퍼가 3 000건을 넘었지만,
엔진은 에러 없이 로그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레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숫자는 잠시 쉬는 게 좋겠죠.
숨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라이샤가 웃으며 덧붙였다.
“다음엔 우리가 숫자를 부를 차례입니다—필요하다면.”
가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라펠 파편이 박힌 코어룸 틈으로 떨어지는 새벽 햇빛을 바라봤다.
은색 조각이 금빛으로 물들며 조용히 반짝였다.
“정의는, 질문 위에 숨을 얹어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던 긴, 깊은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