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렇게 살면 되겠니?”
“너, 이렇게 살면 되겠니?”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그 말 한마디는 마치
나를 몰아세우는 공격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말에 상처받은 나를 감추기 위해
방어적으로 더 큰소리를 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내버려 둬요.”
하지만 정말, 나는 알아서 잘 살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방황했고, 흔들렸고,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의 지적이 싫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 말을 뱉었을 뿐이었다.
한때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기도 했다.
왜 저렇게 사는지, 왜 바뀌지 않는지,
속으로 판단하고, 심지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감정이 나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답답했던 건, 결국 나였다는 걸.
내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 사람 안에서 내 허물을 보고 있었다는 걸.
나는 내 인생의 어떤 부분에서도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해놓고
정작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던,
그 과거의 나를 똑같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사람은 ‘내 공부’였다.
그 사람을 보며 속이 답답했던 건
내가 감추고 있던 허물이 비쳤기 때문이고,
그 허물을 인정하지 않아서 아팠던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 앞에 오는 인연은 모두가 귀한 인연이다.”
그 말은 그냥 예쁜 말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나의 거울이 되어
내가 숨기고 있던 감정을 꺼내 보여주었고,
어떤 사람은 내 속의 화를 들춰
내가 다듬지 못한 마음을 공부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회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들—
분노를 일으키는 뉴스, 믿기 힘든 사건,
그 모든 것들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된다.
“이건 내 앞에 온 인연이다.”
“내 안에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허물이 있지는 않을까?”
세상은 그렇게,
나를 조금씩 더 깊이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 돌아봄이 반복될수록,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우리는 모두 아직 ‘공부 중’이다.
말보다 행동이 늦고,
의지는 앞서 가지만 실천은 더디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어제보다 더 ‘나를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오늘 나에게 생겼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어제보다 더 성장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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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당신 앞에 오는 사람들, 사건들, 그리고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공부하게 해주는 ‘인연’ 임을 기억해 보세요.
오늘 당신 앞에 온 그 사람도,
사실은 당신 안의 무언가를 비춰주는 거울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