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은 먼저 숫자를 떠올린다.
체중, 칼로리, 감량 목표.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이어트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식이(食餌), 생활 방식’에 가깝다.
얼마나 줄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예전에는
다이어트를 결심할 때마다
몸을 문제로 삼았다.
살이 쪘고,
의지가 부족했고,
그래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식사는
늘 목적을 향해 조급했다.
빼기 위해 먹고,
빼기 위해 참았다.
그 과정에서
몸은 점점 적이 되었고,
먹는 행위는
죄책감과 계산의 시간이 되었다.
지금은 관점을 조금 바꾸었다.
살을 빼겠다는 생각보다
이전의 바르지 못한 식습관을
다시 정돈해 보자는 쪽으로.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한입의 크기,
씹는 시간,
배고픔이 왔을 때의 반응.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다이어트는
결핍을 견디는 훈련이 아니라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부족하면 채우고,
과하면 멈추는 법을
몸에게 다시 가르치는 일.
그래서 나는
하루 총칼로리를 하나의 기준으로 둔다.
2,000kcal 미만.
완벽히 맞추려 애쓰지 않는다.
넘지 않겠다는 선만 지킨다.
단백질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날에는
총량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이건 타협이 아니라
현실을 존중하는 균형 감각이다.
배고픔도 마찬가지다.
배고픔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폭발하지 않게 다룬다.
물 한 모금으로 먼저 묻고,
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응답한다.
허기가 남아 있으면
그 신호를 억누르지 않고
조용히 함께 둔다.
이렇게 배고픔을 대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배고픔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가끔은
조금 덜 찬 상태로 잠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안정된다.
굶어서가 아니라,
하루를 균형 안에서 마무리했다는
감각 때문이다.
주말이 다가오면
허기가 커질 때도 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그동안의 절제가 몸에 남긴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치팅데이 대신
리필을 택한다.
해방이 아니라 조정.
과잉이 아니라 균형을 위해.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한 가지 생각이 분명해졌다.
다이어트는
살을 빼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몸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라는 것.
내게 주어진 이 육신은
소모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
대자연의 에너지,
하느님의 에너지가
잠시 머무는 그릇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그릇을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사적인 욕망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책임에 가깝다.
이번 동안거 동안
나는 이 공부를 가장 앞에 두기로 했다.
줄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바르게 쓰기 위한 시간으로.
살이 빠지는 것은
아마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진짜로 얻고 싶은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균형을 감각하는 능력이다.
다이어트는 끝나는 목표가 아니라
계속 살아가며 다듬어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살을 빼고 있는 게 아니라
삶의 리듬을 바로 세우고 있다.
그것으로
지금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