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마음이 먼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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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별일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지하철은 조용했고, 창밖 풍경은 매일 보던 건물과 간판들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움직이지 않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나도 그들 사이에서, 별 다를 것 없는 사람 하나였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다.
허전함, 무게, 또는 실체 없는 결핍.
이름도 없고 이유도 없는 그 감정은,
무언가를 조용히 빼앗기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출근 후 가장 먼저 마주한 건 팀장의 무표정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회의실에선 늘 그렇듯 가장 구석에 앉았다.
메모하는 척, 집중하는 척, 졸지 않기 위한 척.
나는 그렇게 ‘살아내는 중’이었다.
그날 오전, 회의가 끝난 뒤 팀장이 내게 말했다.
“진수 씨, 요즘 좀… 예전 같지 않네요.”
그 말은 질책도 칭찬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깊숙한 곳에 파문을 일으켰다.
‘예전’이라는 말은 낯설었다.
언제가 예전이었을까.
내가 나였던 시절이 있었나?
나는 멍하니 웃으며 “네, 좀 그러네요…”라고 대답했지만,
그 순간 무엇을 말했는지도, 듣고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소리 없는 벽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느낌.
조용한 무너짐이 시작되었다.
그날 오후, 나는 책상을 정리했다.
휴게실에 간다고 둘러댄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어쩌면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햇살은 유난히 눈부셨고, 바람은 아무 냄새도 없었다.
나는 정처 없이 걸었다.
지도도 목적지도 없이, 회사 근처를 돌다 처음 보는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다 한 낡은 나무문 앞에 멈춰 섰다.
간판도 불빛도 없는 그 문은,
이상하게도 나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들어가도 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문이 열렸다. 오래된 마음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공간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누군가의 초대는 없었지만,
그 문은 분명히 나만을 위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을 통과했다.
발로 들어갔지만,
그 공간을 먼저 지나간 것은 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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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남은 질문
나는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는가?
아니면, 내 마음은 이미 다른 문을 열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