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둘 곳이 없다는 말
오디오 북입니다
도망친 것도, 무언가를 찾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더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날 나는 말없이 걷고 있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 낯선 골목의 모퉁이에 이르렀다.
지도에도 안 나올 것 같은, 조용해서 현실 같지 않은 거리.
그리고 그곳에서 문 하나를 발견했다.
평범한 나무문이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오래전부터 거기 있어야만 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별다른 이유도 기대도 없이 나는 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너머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온기가 밀려왔다.
낯설지만 편안한 공간.
말없이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분위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앉으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여기에 와야 했던 사람처럼.
그리고 오래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지쳐 있는 걸까?’
요즘 자주 머릿속을 맴도는 문장이 있었다.
“집에 있는데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말.”
나는 집이 있다.
전세로 얻은 아파트, 정기적으로 요금을 내는 인터넷, 냉장고 속 식재료, 불이 켜지는 방.
누가 봐도 ‘사는 집’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집이 더 이상 집 같지 않았다.
몸은 분명히 집에 도착했는데,
마음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현관에 남겨지는 기분.
식탁 앞에 앉아도, 소파에 누워도,
심지어 침대에 누워도 내 마음은 자리를 못 잡았다.
가족이 있는 거실에서도,
나는 마치 손님처럼 조심스러웠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어떤 말도 쉽지 않았다.
말을 꺼내면 ‘또 시작이야’라는 눈빛이 떠올라,
슬쩍 화장실로 피해 세면대 앞에 서 있던 적도 있었다.
TV를 틀어놓고 앉아 있어도,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여다보지만 연락할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은 늘 똑같은 말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냥 있자…”
그리고 그렇게
‘그냥 있는’ 날들이 며칠, 몇 달, 몇 년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몸이 쉰다고 마음까지 쉬는 건 아니라는 걸.
침대에 누웠다고 마음까지 눕는 건 아니라는 걸.
내 마음은 언제나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들은 말들, 하지 못한 대답들,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 자신.
어디든 앉을자리는 있었지만,
마음이 앉을자리는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책상 너머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는지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기는요, 마음이 잠시 앉아 있어도 괜찮은 곳이에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마치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꾹 눌러 삼키듯 고개를 떨궜다.
‘괜찮다’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깊게 스며들었다.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어딘가에 **‘내 마음을 내려놓아도 되는 자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어떤 이유로 생긴 공간이든, 누가 만든 공간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여기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살 것 같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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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남긴 질문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앉아 있나요?
당신의 마음이 쉬어도 괜찮은 자리는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