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 대신 #3

마음이 잠시 앉아도 괜찮은 곳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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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입니다

https://youtu.be/kJkwJPmGsSo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은 오랜 침묵 끝에 겨우 꺼낸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가,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고요히 웃었다.

“이곳은요, 마음이 잠시 앉아 있어도 괜찮은 곳이에요.”

그 말은 바람처럼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 작은 먼지를 털었다. 뭐랄까. 무너진다기보단, 오랫동안 비어 있는 줄도 모르고 세워놓은 마음의 가짜 기둥 하나가 툭, 부서진 느낌이었다.

그는 내 표정을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위로하려는 말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한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마음이 앉아 있어도 괜찮다’는 말.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어디에서 마음을 편히 내려놓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는 다시 물었다.

“진수님, 언제부터였을까요?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한 게요.”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무너지기 시작한 때라니. 나는 그저 바빴고, 열심히 살았고, 참고 견뎠던 사람이었을 뿐인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물음은 내 안의 오래된 서랍을 하나둘 열기 시작했다.

“… 고등학교 때쯤이요.”

기억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풍경은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시끄러웠던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던 선생님.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반장이 책임져야지”라며 불려 나가던 나. 친구들의 시선.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 침묵. 그리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쟤 잘못 아니에요.”

그 말 한마디조차,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내 안에서 뭔가가 ‘툭’하고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로 ‘나만 참으면 된다’는 말이 내 안에 박혔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나서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배웠다. 그걸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끌고 다녔던 것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 있었다. 나를 해석하지 않았고,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껏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내 기억을, 이렇게 꺼내어 말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이후의 삶은 어쩌면 그날의 연장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먼저 출근하고, 회의 자료를 꼼꼼히 만들고, 누군가 실수하면 내가 대신 사과하고, 모두가 퇴근한 후에야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야 내가 겨우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모든 노력의 뿌리에는 ‘그날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그 기억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했다.

“진수님, 무너졌다는 건 약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렀다. 무너졌다고 해서 쓸모없어진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무너짐은 내가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라는 것.

나는 그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안의 허기가, 감정의 피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이제야 나는 나에게 말할 수 있다.

괜찮아. 잠시 앉아 있어도 돼. 지금은 그렇게, 충분해.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디쯤 머물러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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