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 대신 #4

무너졌다는 건, 아직 견디고 있다는 뜻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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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입니다

https://youtu.be/bg4wBjPuSKA


우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누가 침묵을 이어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저 같은 공기 속에 조용히 머물고 있었다.

진심을 꺼낸 뒤의 고요는 종종 어색하거나 불편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공간의 침묵은 다르게 느껴졌다.

어딘가 단단하고도 부드러웠다.

그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책상 위의 작은 유리병을 손끝으로 굴리고 있었고,

그 무심한 손끝이 오히려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누군가의 말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 한 문장이 되어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참 후, 그가 말했다.

“무너졌다는 건, 나약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간단한 말인데,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무거웠다.

세상은 늘 버텨야 한다고 말한다.

“무너지면 안 돼”, “더 강해져야지”,

그런 말들 속에서 우리는 감정이 지친다는 감각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그는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은 무너지기도 전에 사라져요.

자신을 놓아버리는 거죠.

하지만 무너졌다는 건, 적어도 아직 ‘견디고 있다’는 증거예요.”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누군가에게 ‘무너지지 말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무너져도 된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책임을 쌓고, 기대를 쌓고, 감정을 쌓는다.

그리고 그 위에 나라는 사람을 올려놓는다.

그러다 어느 날, 조용히 금이 간다.

나는 오늘 처음 알게 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 많은 걸 쌓아왔고

그 무게가 감정의 허기와 무기력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 한구석을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쌓는 것보다 비우는 걸 먼저 배워보는 게 어떨까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단 하나의 목적도 없었다.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위로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앞에서,

내 안의 단단한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도, 나 자신을

믿어봐도 괜찮을까.’


당신은 오늘, 무엇을 쌓고 무엇을 비워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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