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이웃의 대륙(닫힌 마음의 마을) #14

2장-6: 탁기의 조짐

by 공인멘토

가온의 말이 광장에 퍼지고 난 뒤, 한동안 마을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침묵과는 달랐다. 이전의 침묵이 공포와 강제로 이루어진 ‘닫힌 침묵’이었다면, 지금의 침묵은 각자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눈을 피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옷자락을 쥐었고, 누군가는 손등 위에 떨어지는 자신의 숨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건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 안의 침묵을 듣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광장 끝자락의 오래된 우물 쪽에서, 아주 낮고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온은 곧장 고개를 들었다. 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다.

“저건…”

린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그녀는 몸을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가온은 천천히 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우물 주변의 돌바닥엔 이슬도 없고 바람도 없었다. 하지만,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

그는 무릎을 굽히고, 우물 가장자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 쿵…’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심장박동처럼 울리는 진동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울림은 살아 있었다.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 순간, 가온은 다시금 떠올렸다. 사고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사의 기운이 고도로 차올라 만든 현상. 지금 이 마을의 공간 어디선가, 바로 그 ‘사의 기운’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그는 곧장 일어섰다. 광장 전체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지금 이 마을엔 새로운 사고가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방금 이야기했던 탁기의 실체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마을 사람들 중 몇 명이 움찔했다. 한 노인은 등을 구부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이들은 부모 곁으로 바짝 다가섰고, 장터 구석에 있던 여인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

“혹시… 그게 돌아오는 건가요? 우리 아들을 데려갔던 그… 검은 그림자?”

가온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정확히 그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감정을 쌓아 숨기고, 서로를 의심하고, 침묵했던 과거가 아직 이 마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그 속엔 이전과는 다른 힘이 있었다. 린은 조용히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것은… 내 오빠의 마지막 외침일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컸다. 그것은 탁기의 실체를 증언하는 고백이었고, 동시에 마을의 기억을 끌어올리는 '말의 시작'이었다.

가온은 린의 옆에 섰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운이 다시 자라나지 않도록, 우리 안의 잘못된 감정을 먼저 바라보고 비우는 것. 그것이 탁기를 멈추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자 광장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한 노인이 나섰다.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말해야겠군. 내가, 그날 우물 옆에 있었소.”

마을 전체가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노인은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도우려 하지 않았어. 내 손을 뻗으면, 끌어낼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난 그저 눈을 돌렸지. 왜냐고? 그 아이의 아버지와 예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거든. 사소한 다툼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의 말에 린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가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가온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마을은 이제 첫 고백을 시작했다. 이것이 곧, 탁기의 실체와 마주하는 첫 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이 고백들이 이어질수록, 사의 기운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것이 다시 사람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 정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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