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달리기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죽었을 수도 있어요."
이 말은 복학왕으로 시작해 지난해 마라톤 풀코스 방송으로 달리기 이슈를 한껏 올려준 기안84의 말이다. 유튜브에서 본 그의 영상 제목은 '생존과 달리기'였다. 생존과 달리기가 무슨 의미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시작된 짧은 영상 속에 그의 지난 날 힘든 시간들이 가볍게 나레이션 되고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항상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고 마감하고, 스트레스는 술로 풀고, 그리고 또 마감에 스트레스를 받고를 반복하며 살았다. 31살에 복학을 첫 연재한 날, 영동고속도로에서 투스카니를 타고 가다 공황장애가 온 뒤부터 달리기를 열심히 했단다.
공황장애는 어떤 것이기에 그는 그렇게 달릴 수밖에 없었을까? 스스로를 통제 못할 듯한 공포감과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느낀단다. 이런 증상은 뇌의 세로토닌 부족으로 우울증이 오다가 심해지면 공황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아무리 약을 먹어도 근본 치료를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그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한동안 잠을 못자고 무언가에 달려가는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늘 지나다니는 터널 안에서 공포감을 느낀 적이 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만 차가 밀리는 듯한 느낌에 진땀을 빼기도 했었다. 이게 약간의 공황장애 증상이 아닐까 하는 물음표를 던졌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 부족한 잠을 자고 스트레스를 피하려 노력했더니 다행히 그런 증상은 없어졌다. 하지만 지속된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공포심을 이겨내고 삶을 살아가게 만든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그에게 생존인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세계적 작가로 키운 힘 또한 달리기였다. 누군가에겐 살기 위한 방법이 달리기였다면, 이 작가에겐 달리기가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주는 도구였다.
"그래서 마라톤 단련은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매일 집필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지탱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책 속 저자는 매일아침 달리는 길 위의 배움으로 소설 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에겐 매일 10km 달리기와 수영이라는 운동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는 도구였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나 또한 매일 아침 아주 적은 이유들로 투두리스트를 써 내려간다.
수영하기-건강
신문읽기-지식
단상쓰기-작가
이런 이유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나는 오랜 시간 수영을 해도 여전히 화,수,목,금 아침 알람에 반쯤 감긴 눈으로 수영장을 가곤한다. 나에겐 그 '아주 적은 이유'가 너무 작은 걸까? 하지만 그 소중한 이유 하나하나를 단련하는 일이 중요하단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누군가는 글 잘 쓰기 위해 달린다. 나는 어떤 작은 이유들로 달리고 있을까?
작은 성취감으로 마음의 풍성함을 키워가며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게 바로 달리기다.
그렇게 달리기는 나에게 세상의 흔들리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달릴 수 있는 마음근육의 단단함을 준다.
한동안 그만둘 이유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발목이 아프다, 무릎이 아프다, 피부가 맺히다 등등.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아주 적은 이유'를 생각하며 운동화 끈을 메어본다.
삶의 끈 또한 그렇게 매어나간다.
작은 이유 하나하나를 소중히 단련해가며 달려나가는 것, 그게 바로 나의 달리기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