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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당신을 해고합니다

by 미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본 대사가 기억난다.

한 팀장이 직원을 해고하는 장면에서,
해고당한 직원이 외친다.

"나 또한 당신을 해고합니다.
내 인생에서 당신을 해고합니다."

이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해고."

회사의 용어로 익숙한 단어지만,
내 삶 속 인간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가족, 직장, 지역, 나라, 더 넓게는 세계까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응원을 받으며 성장하기도 한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내가 속한 공간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에너지를 쏟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정리되는구나."


예전에는 누군가의 삶이 궁금했고,
그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만 에너지를 나누고,
내 체력과 마음을 불필요하게 소진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내 생각의 깊이가 변하고 있어서일까?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구를 해고하고 싶은가?"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항상 "내가, 내가, 내가" 라고 말하는 사람.

대화가 안 되는 사람.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런데,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로 대화를 끌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분위기 파악 없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는 그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내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해고했다.


기본적으로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성향이라,
그동안 많은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을 안고 갈 필요는 없다.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나를 위한 ‘성장’이고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내 인생에서 "불필요한 사람을 해고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진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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