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곧 다가온다.
한 해의 시작을 다짐했던 새해 첫날에 이어,
또 한 번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게 만드는 명절이 코앞이다.
올해는 갑작스럽게 긴 연휴가 생겼다.
31일 금요일 하루만 더 쉬면 9일이라는 긴 설 연휴가 주어진다.
결혼 후 맞이했던 명절은 늘 시댁에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시댁 작은집에서 제사를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다시 시댁으로 돌아와 명절 음식을 준비하던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한꺼번에 음식을 준비해 오지 않는 걸까?
왜 굳이 이중으로 고생을 하셔야 하는 걸까?
그저 묻지 않고 지내다 보니,
시간이 지나 작은집에 발길이 끊긴 지금도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어릴 적 명절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아빠는 항상 싸우셨고,
나는 명절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기억했다.
멀미를 하는 삼남매를 데리고 먼저 시골로 향한 엄마,
뒤늦게 합류하는 아빠.
엄마는 시댁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싸움이 벌어졌다.
결혼을 하고 돌아보니,
엄마의 대단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 셋을 데리고 명절 준비를 하고,
시댁에서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내던 엄마.
지금의 나였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게 얼마나 큰 인내와 헌신이었는지 알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신앙이 깊은 시부모님 덕분에
비교적 평온한 명절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두 분의 무덤덤한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
"내가 반갑지 않은 건가?"
"손주가 귀하지 않은 건가?"
표현력이 없으신 두 분의 모습에
섭섭함이 쌓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묵묵함이 주는 편안함을 깨달았다.
잔소리도, 강요도 없이
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계셔 주는 두 분 덕분에
명절이 더 이상 두려운 날이 되지 않았다.
올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과 함께
여행을 계획 중이다.
"명절에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강요도 없는
이 편안함이 참 감사하다.
엄마에게 "시댁"이라는 단어는
늘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떠올리게 했지만,
나는 시부모님의 묵묵함 속에서
그 자리를 지키는 편안함을 배운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되는 묵묵함.
그 덕분에 나도 이번 명절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받은 감사함을 돌려주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