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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어. 나중에.

by 미려

아들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한 무관심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나중에.”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 무책임하게 들렸다.


모르겠어. 나중에.

이 두 단어는 우리 대화의 종결자다.
내가 무언가를 물어볼 때,
이야기를 꺼낼 때,
아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이다.

“모르겠어.”
“나중에.”

이 말들은 생각하기 싫다. 대화하기 싫다. 책임지기 싫다.라는 뜻으로 들린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머리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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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데, 나도 나를 책임지지 않으려 했던 시절이 있었나 싶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모르겠어’라는 말은
더 이상 엄마랑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뜻처럼 들리고,

‘나중에’는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항복처럼 들린다.

내가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아이가 나를 밀어낸다는 느낌.그 감정이 내 안의 화를 끓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야 할 말을 툭, 쏟아내게 만든다.


얼마 전 읽은 《마음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전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해야 인간은 감정 조절과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 아직 전전두엽이 덜 자란 걸까?
그래서 나랑, 이렇게 안 맞는 걸까?

그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지우고 싶은데, 자꾸 생긴다.
이것도, 사춘기인가?


나는 한참을 생각하고 내마음을 위로한다.

아들의 “모르겠어”는 진짜 모른다가 아니라,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는 걸.
아들의 “나중에”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의 거리라는 걸.

그 애는 모른다.말하는 것이 얼마나 관계를 살리는지.
그 애는 모른다.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나는 안다.나는 알기 때문에,
나는 화가나다 가슴이 아프다.

아이의 전전두엽은 아직 자라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전전두엽은
기다리는 법, 말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법을
천천히,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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