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시간을 지나
우리는 조금 더 조심히,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을 견뎠으니,
내일은 더 괜찮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 있다는 건,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평범했던 점심이었다.
익숙한 지인들과의 수다, 따뜻한 식사, 여유로운 웃음.
그런데 전화 한 통이 들어왔다.
평소 점심시간에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조금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점심 먹고 있어?”
“응, 무슨 일 있어?”
“다 먹고 나서 전화해.”
식사 도중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오늘 병원에 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래.”
큰 병원.
그 말은 이미 어떤 것들을 예감하게 한다.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말했다.
마음속은 이미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행복했던 점심을 뒤로한 채 운전대를 잡았다.
응급실 침상에 누워 있는 남편의 모습은
보기엔 멀쩡했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혹시 집안에 50대에 갑자기 돌아가신 분 있으세요?”
의사의 말은 조용했고, 나는 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의사의 손끝이 가리킨 영상엔
뇌 안의 하얀 부분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 부분은... 죽었습니다.”
죽었다니.
죽은 것이 아니라 막혔다는 뜻이란다.
그리고 그걸 대신하는 다른 혈관들이
그나마 작동하고 있어서 괜찮다는,
‘다행이다’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를 위로가 돌아왔다.
<뇌졸중 집중치료실> 입원.
감각기관의 손상.
앞으로의 평생 약물복용.
절대 금주.
짧은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계속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괜찮겠지, 괜찮겠지.
남편은 지금도 말한다.
“나는 멀쩡해. 다 괜찮아.”
하지만, 어느 순간 발끝 감각이 85%쯤 느껴진다며
가만히 발을 바라본다.
그 모든 시간 속, 나는 혼자서 물었다.
왜 그동안 자신을 더 돌보지 않았을까.
왜 조금만 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
왜 술을 덜 마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또 안다.
그 ‘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있다.
저염식단과 갖은 야채로 식사를 하는 식탁 앞에서
그동안의 음식들과의 작별 이야기를 나눈다
그 평범한 순간들이
이제는 영원히 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로 남는다.
아픈 시간을 지나
우리는 조금 더 조심히,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가야한다.
오늘을 견뎠으니,
내일은 더 괜찮을 거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