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찌뿌둥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주섬주섬 짐을 싸서 집을 나선다.
주말 오후의 낮잠은 늘 위험하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하루가 통째로 저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잠 대신 수영장을 선택한다.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수영장으로 가는 길.
혼자 오리발을 끼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귓속으로 흘러드는 음악을 따라 몸을 움직이다 보면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복잡한 생각이 있어도,
마음이 어지러워도
여기서는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멍한 채로 움직일 수 있는 곳.
물속은 나에게 그런 장소다.
요즘 나는
‘멍한 시간’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오늘은 수영장 한편에 마련된 온수탕에 잠시 서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싶었다.
그런데 물속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래전 같은 반으로 수영을 배웠던 사람이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이네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렇게 한참을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눈다.
그저 지나가면 좋았을 텐데,
나는 오늘 예의 바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의 귀한 멍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아들의 얼굴이 스친다.
이따금 멍해 보이던 아이. 말수가 줄고, 대답이 느려졌던 시간들.
나는 그 모습을 답답해했고,
“왜 그렇게 멍해 있니?”라며 화를 냈다.
그때는 몰랐다.
멍함이 게으름이 아니라
견디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걸.
어쩌면
그 멍한 시간은
나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같이 필요한 시간이었을 텐데.
그래서 요즘 나는
일부러라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멍해질 수 없는 어른은
가장 먼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날카로워진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서.
멍함은 쉬는 게 아니라,
나를 덜 망치기 위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