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앞에서 나는 딸이 되었다

by 미려

“오래간만에 용돈 받았으니 쇼핑하러 갈까?”


좀처럼 옷 사러 가자고 하지 않는 엄마의 전화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몸을 움직여 나선다.


명절에 딸들이, 아들들이 드린 용돈.

처음엔 ‘용돈’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엄마 아빠는 손주는 물론이고 딸과 사위에게까지 늘 세뱃돈을 주셨다.

오랫동안 직장을 다니신 아빠도 이제 집에 계시고,

연금과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시는데도 말이다.


자식들이 매달 드리는 용돈도 없고

명절, 생신에 이따금 드리는 돈이 전부인데

엄마는 그걸 “용돈”이라 부른다.


엄마와 둘이 근처 쇼핑몰에 갔다.

익히 잘 아는 브랜드가 50% 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자” 하셨다.


막상 가보니 몇 달 지난 상품들이었고

마음에 드는 건 사이즈가 없었다.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엄마가 딱 마음에 드는 간절기 재킷을 발견했다.

체구가 왜소한 엄마에게 안성맞춤.

엄마는 “내가 살게” 하면서도

사위 옷도 하나 골라 같이 결제했다.

그렇게 첫 쇼핑이 끝났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

문득 예전에 내가 “커서 못 입겠다” 싶었던 브랜드가 생각났다.

세일 소식이 떠올라 “잠깐만 들러볼까?” 하고 들어갔다.


나는 블랙 롱 원피스를 찾고 있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원피스가 있었다.

입어보니 군살이 붙은 내 몸에 딱 맞았다.


아, 이거다.


그 순간 또 하나 보였다.

누군가가 입고 있던 짧은 봄 재킷.

‘저건 엄마한테 딱인데…’ 싶었다.


평소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엄마는

색이 강한 옷보다 짙은 베이지나 블랙이 잘 어울린다.

엄마에게 허용된 색의 범위는 좁지만

그만큼 잘 맞는 옷을 만나면 반짝 빛이 난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엄마, 이건 내가 사줄게.”


하지만 엄마는 또 괜찮다며 결제를 따로 하셨다.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괜찮다”를 꺼내는 사람이라서.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는 “딸들이 준 용돈을 다 썼네” 하며

좋아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워했다.


그래서 나는 봉투를 꺼냈다.

아들 세뱃돈을 갖고 있던 그 돈.


“엄마, 그 재킷은 내가 사주고 싶었어.

엄마가 입으면 예쁠 것 같아서.

이건 내 마음이야.”

엄마는 또 괜찮다 했지만

몇 번을 말하자 결국 봉투를 받았다.

“고맙다”는 말이 따라왔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마음이 커진다.

하나를 사도 정갈하고 단정하게,

내 기준에서 조금 더 ‘좋은 것’을

엄마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


그게 아마 딸의 마음일 것이다.


오래간만에 엄마랑 쇼핑도 하고

마트도 들르고

마지막엔 다이소까지 갔다.

필요한 생활용품을 같이 고르다 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늘 바쁜 딸이라고,

그래서 엄마에겐 안쓰러운 큰딸이라고

엄마는 말한다.


작은 체구로 달리기를 한다고 나섰다가

무릎 아프다고 어설프게 걷는 큰딸을

엄마는 또 걱정한다.


엄마에게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데

나는 그런 딸은 잘 못 된다.


부모에게 받은 것 없이 결혼했고

마이너스로 시작한 삶은

풍요롭지도 부유하지도 않다.


그래도 적어도

일 년에 두 번쯤은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는 좋은 것을

기분 좋게 사줄 수 있는 딸.


엄마의 보호자처럼

오래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