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맛을 알게 된 날부터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달달한 커피에서 벗어나 쓴맛을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게 어른이 되는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한때 즐겨가던 스타벅스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했다.
잔잔한 재즈음악, 백색소음, 커피향, 예쁜 굿즈들.
눈과 귀와 콧끝까지 나를 감싸던 그 공간이 좋았다.
요즘은 회사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작은 커피숍을 찾는다.
음악이 유독 좋은 곳이다.
사장님께 음악이 참 좋다고 했더니
스피커가 좋은 거라며, 들을 줄 아시는 분이라고 좋아하셨다.
'역시 나는 똥귀가 아닌 참귀였어.'
그곳은 혼자 가려고 노력한다.
온전히 몰입하고 싶은 공간이니까.
한참을 다닐 때
늘 같은 자리에서 종이신문을 읽던 노년의 여성을 본 적이 있다.
신문이 신문물이 되는 시대에
여러 장을 쌓아두고 한 장씩 넘기던 그 모습.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그 평화로움이
오래 눈에 남았다.
몸이 안 좋으면 커피부터 끊는다.
약을 먹어야 하고, 속을 달래야 하고.
한동안 또 그런 시간이 있었다.
커피가 그리운 게 아니었다.
커피가 생각날 수 있는 내가 그리웠던 것 같다.
이제 좀 생각이 난다.
그 말은, 내가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은 텀블러를 하나 들고 출근길 스타벅스에 들렀다.
책상 위에 텀블러를 올려두었다.
아직 뜨거웠다.
나는 오늘 이 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나눠 마시며 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커피 한 잔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나를 채운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오늘의 공간은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