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는 곳곳마다 분노가 일렁인다. 사람들은 몹시 화가 났다. 고작 16개월 인생에 절반이 고통뿐이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런데 이런 류의 화는 아이들이 사라질 때마다 늘상 있었다. 평택 원영이가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쓰러져갈 때도, 천안에서 9살 남자아이가 여행용 캐리어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도 사람들은 몹시 화를 냈다.
사람들의 분노를 마주하며 생각했다. 화난 감정에 힘입어 SNS에 몇 마디 쓰고 챌린지 같은 캠페인에 동참하고, 그러고 나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고 또 나의 삶을 살겠지. 어쩔 땐 그럴 수 있음에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직업 특성상 이따금씩 아이와 관련된 사건을 마주한다. 그럴 때면 나는 하루 종일 속이 울렁거린다. 해결되지 못할 걸 알면서도 해결되지 못할까 봐 조급해진다. 내 아이를 낳고부터는 더욱 심해졌다. 아예 아동 사건을 외면한 적도 있다.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미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고통받는 다른 아이도 소중했다.
나는 지난해 안산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급식을 먹고 장출혈성 대장균에 집단 감염된 사건을 취재했다. 사건을 알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다. 의사로 일하는 친한 친구랑 오랜만에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뜬금없이 친구가 "왜 안산 유치원은 기사에 안 나와?"라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 "안산에 꽤 큰 유치원이던데, 거기서 애들이 지금 식중독 집단 감염돼서 난리야. 근데 단순 식중독이 아니라 용혈성요독증후군까지 와서 중환자실 가고 투석하고 그런다던데... 언론에서 너무 조용해서.."
그리고 "나는 이게 코로나보다 심각하다고 봐.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장기를 다 망가뜨리는 거야.. 이게 더 심각한데 왜 조용한지 모르겠어.."라고 덧붙였다.
시답잖은 안부 카톡 끝에 나온 친구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안산 유치원에서 식중독이 발생했다는 질병관리청의 브리핑을 언뜻 본 것 같았다. 때가 6월이었으니, 여름이 돼 식중독이 왔나 보다 했다. 안일하게도.
바로 안산시 보건소와 시청, 아이들이 치료받고 있다는 병원에 취재했다. 친구 말은 사실이었다. 무려 십 수 명의 아이들이 용혈성요독증후군의 합병증을 얻어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첫 취재 당시 중증 상태의 아이들 치료 지원을 보건소 차원에서 대응하는 수준이었다. 코로나 대응에 정신없는 질병관리청이 제대로 된 역학조사도 보건소에 미룬 상태였다.
다행인지 보도된 기사는 파장이 컸다. 여론이 세게 출렁이자 중앙정부가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고 집단감염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경찰도 유치원 압수수색 등을 벌이며 수사에 나섰다. 교육청은 남은 아이들의 교육을 이어가기 위해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냥 묻힐 뻔했던 안산 유치원 급식 사고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유치원 급식 실태가 수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 어느 정도 원인이 규명되고 현재 재판도 진행 중이다. 다행히 아이들 치료비 등 보상도 이뤄지고 있고 학부모들이 원했던 유치원 공립 전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는 수순이다.
근데 그게 끝이다. 사고가 발생한 안산 유치원만 해결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다 끝난 문제'라고 한다. 자꾸 들쑤시는 나를 성가신 듯 바라본다.
정말 끝일까. 사고가 난 안산 유치원 급식실 냉장고는 23년이 됐다. 냉각기능이 70%밖에 되지 않아 식재료 관리에 치명타를 입힌 주범이다. 또 집단급식소인 유치원에 식재료를 납품하려면 집단급식소 식자재 납품업체로 허가를 받은 곳과 거래해야 하는데, 미허가 업체와 수년간 거래했다. 심지어 영양사 자격도 없는 원장의 딸과 남편이 급식을 운영하는 주체로 활동했으니, 식재료 검수서 급식일지 등 기본적인 급식안전 절차는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것이 안산 유치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부터 특정감사를 통해 사립유치원을 감사한 자료가 공개돼 있다. 그 자료 중에는 급식실태를 감사한 자료도 포함돼 있었고 나는 지적을 받은 200여 개 유치원 지적사항을 전부 살펴봤다. 미허가 업체랑 식재료를 거래하는 유치원은 대다수였고, 자격 없는 조리 보조사가 급식을 모두 책임지는 일도 허다했다. 대량의 식재료를 취급하는 만큼 집단급식소라면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식재료 구매서 검수서 급식일지 등의 기본 서류조차 작성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한 유치원도 대다수였다. 냉장고에 딸린 냉동고 외에 별도 냉동고가 없는 유치원도 거의 대부분이라 사실상 식재료 관리를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스프링클러, 소화기 하나 제대로 배치되지 않은 곳을 급식실로 개조해 음식을 조리하는 유치원도 있었으니 솔직히 자료를 살피며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이런 유치원은 그간 위생점검을 받지 않았을까? 안산 유치원도 사고가 나기 불과 한 달 전에 지자체 위생점검을 받았고 불행하게도 무사히 통과했으며, 특정감사에 걸린 유치원 대다수도 감사 이전에 1년에 한 번씩 위생점검을 받아 대부분 통과했던 곳들이다. 더구나 세게 밀고 들어온 교육청 특정감사 이후에도 이들 유치원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감사 지적 이후 지적사항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살피는 사후 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끈질기게 후속보도를 이어가며 꾸준히 고발했다. 그러나 여론은 그때뿐이었다. 여론이 식자 아주 빠르게 정부도 관심을 껐다. 아이들은 오늘도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밥을 먹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정인이 죽음을 향한 여론의 뜨거운 분노가 불안하다. 허무한 마음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