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는 왜 '부모'를 안 가르쳐주나요.
마감시간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후배녀석이 받던 전화를 끊고 말했다.
"변사? 뭔데?" 후배 기사를 데스킹(기사 팩트체크 및 수정하는 과정을 통칭하는 말)하던 터라 얼굴도 안보고
되물었다.
"그게..엄마가 아이를 죽인 것 같아요.. 엄마는 자살시도를 한 것 같구요.."
순간 머리 속이 아득해졌다. 누가 마음에 돌덩이를 던진 것 처럼 묵직해졌다.
말문이 막혔다. '또?' 라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1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 중에 절반 이상을 사회부에서 보냈다. 사건 사고를 주로 다루는 부서의 특성상 매일 죽음을 접한다. 생각보다 매우 잦게 죽는 일을 간접 경험하면서 일상이 예민하고 괴로울 때가 많다. 너무 흔한(?) 죽음에 둔감해질 것도 같지만 사실 어떤 죽음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기자로서 좀 더 들여다봤더라면, 그래서 기사로 작성했더라면, 그래도 조금은 달라져서 아이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과대망상'에 가까운 생각이지만, 그래도 그런 자책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근래들어 부모의 극단적 선택에 자녀를 끌고 들어가는 일, 그래서 아이가 죽는 사건이 종종 등장한다.
가족동반자살이라고 에둘러 표현하지만, 사실은 명백한 살인행위다.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해 이런 식의 범죄를 저지르는 부모들도 있지만, 최근엔 우울증 등 부모가 갖고 있는 개인적인 사정을 핑계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향도 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 사건이 일어난 그 날 밤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답답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었다. 이토록 곱디고운 아이의 숨결을 듣고도 과연 그런 짓이 가능할까.
아마 아이를 낳기 전이었다면 부모 개인을 탓했을지 모르겠다. 부모의 정신상태를 지적하면서 어쩌다 발생하는 일인양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어쩌면 부모 개인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100년 산다고 가정하면, 통상 많은 수의 우리는 60~70%에 가까운 시간을 부모로 살아간다. 나머지 30~40% 시간은 사회가 원하는 올바른(?) 부모가 되기 위해 학업에 매진하는데, 단 한번도 '부모'를 배워본 적이 없다. 다행히 교육방송에 나올법한 부모님을 만나면 부모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저절로 배우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살아보니 훨씬 많고 앞선 세대의 부모 역시 부모가 처음인지라 모든 행동이 교육방송같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임신을 처음 했을 때 솔직히 나는 당황했다. 배가 크게 부풀어 오른 모습 정도만 생각했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야 '비포앤 애프터'가 이렇게까지 다를 일인가 충격에 빠졌다.
아이를 가진 엄마의 몸은 오로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 급격하게 변화한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가슴이 땡땡하다 느낄만큼 불어 통증이 생긴다든지, 배가 불러 보기 흉하게 튼살이 생긴다던지, 그리고 호르몬 변화로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내 몸의 가장 약한 부위에 치명타가 된다는 든지(이때부터 심해진 비염이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다)..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신체적, 정신적 대비를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당연한 걸 유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처음 경험하는 내 몸의 변화에 솔직히 우울했다. 두렵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또 어떤가. 이제 막 태어난 아기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해 시도때도 없이 울어재껴 수면패턴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것,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 넘어져서 상처가 난 부위를 때수건으로 세게 밀고 '악'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아프다는 것, 임신과 출산 이후 떨어진 면역력이 당최 돌아오지 않아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심신마저 지쳐 산후우울을 누구나 한번씩 겪을 수 있다는 것..
발견된 아기는 생후 한달밖에 안됐다. 40대 아기 엄마는 혼자 아이를 낳았다. 평소 우울증이 있었고, 아기가 울자 분유에 수면제를 타 먹였다. 아기가 죽자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 다용도실에 보관했다. 출생신고 후 2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양육수당을 신청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공무원의 신고로 알려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을 몰랐다면, '나이 40이나 먹어서 아기 하나 못 키우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생후 한달즈음의 아기는 1시간, 2시간에 한번씩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울었을 것이고 젖을 물리거나 분유를 먹여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을 테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면 당황을 넘어 불안했을 것이고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애써 두둔해본다. 죽이려고 수면제를 먹이진 않았을 거라고. 조금만 잠을 자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 생후 한달의 아기는 1~2시간에 한번씩 모유든 분유든 배를 채워야 하며, 오히려 어른처럼 통잠을 자는 게 이상한 것임을 몰랐다면 아기가 잠을 못자는 것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비정하고 잔인한 엄마가 됐지만.
아마도 알았다면, 누군가 곁에서 조금만 알려줬더라면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뎌냈을 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쯤 3살 아기가 주는 풍만한 행복에 옛 시절을 추억하며 웃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