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듣는 단어였다. 평소 애정하는 출입처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의 물음이라 분명 내가 꼼꼼이 살펴봐야 하는 단어일 거란 직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생소했다.
귀가 솔깃해져서 구체적으로 물었다. "왜 보호가 종료되죠, 아동인데?"
그는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능숙하게 설명했다. "엄마아빠가 이혼했거나 돌아가셔서 보육원에서 자라거나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등 친척 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라에 보호를 신청하면 '보호지원아동'이 되거든요. 그럼 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 아동수당 등이 지원돼요. 근데 아이들이 크잖아요. 만 18세가 되면 정부의 보호가 끝나요. 이제 성인이 됐다 이거죠."
아, 그래서 보호종료아동으로 분류했구나 싶었지만, 곧 다른 생각에 다다랐다. 만 18세가 되면 정말 성인인건가. 이렇게 갑자기? '어른'이 됐다고 말하면 이 아이들이 혼자 험난한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재단 관계자는 설명을 이어갔다.
요즘은 미국도 20살이 훌쩍 넘은 자녀가 독립을 하지 않아 부모들이 골머리를 썩는다는데,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20살에 독립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나는 20살때 엄마 아빠의 통장을 거덜내며 재수학원을 다녔고 대학 내내 용돈까지 받아쓰는 철부지였다.
"요즘 누가 20살에게 너 어른이니까 네가 알아서 모든 걸 해결해라 라고 하지 않잖아요. 근데 우리 아이들은 보호종료아동 딱지가 딱 붙어요. 어른이니까 이제 혼자 알아서 하라는 거죠. 정부에서 자립수당을 일시불로 주긴 하지만, 아예 비빌 언덕이 없는 아이들인데.. 사실 너무 막막하죠."
정부는 보호아동들에게 2가지 선택지를 준다. 대학에 진학을 한다면 보호연장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보호종료가 되는 시점을 유예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보호종료아동이 된다. 대신 자립수당 약 500만원(자치단체에 따라 금액은 조금씩 다르다)을 준다. LH를 통해 전세자금대출을 해주기도 하지만, 이 모든 지원을 받으려면 신청제의 특성상 수십번 스스로 부모없는 아이라는 걸 증명해내야 겨우 받을 수 있다.
나는 보호종료아동이 더 궁금해져서 실제로 보호가 종료됐거나 연장했다는 아동(?)들을 만났다.
보통의 청년들이었다. 누구보다 삶의 의지가 강했고, 열심히, 어쩌면 필사적이다 싶을만큼 삶의 동기부여가 대단한 청년들이었다. 20살이 넘은 친구들이라, 청년으로 불렀지만 몇마디 나눠보니 '아이'였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직은 순수한 아이들. 그들은 무섭다고 했다. "제가 엄마아빠가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저도 보통 친구들처럼 학교 다니고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거든요. 근데 20살이 넘어가니까 갑자기 모든 게 제가 다 알아서 해야 하더라구요. 전 월세 계약하는 방법도 모르고, 동사무소 가서 신청하는 법도 모르고..아무것도 모르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동사무소 가서 도움을 받아볼까해도 그 분들이 더 모르더라구요. 자립수당이 있는지도, 그리고 '사지 멀쩡한데 왜 그런거 신청하느냐'는 말도 듣고 그러니까 위축도 되고..어렸을 때도 엄마아빠 없는 거 잘 견디면서 살았는데, 20살이 넘으니 실감이 되더라구요."
무엇보다 아이들은 '말'에 상처받고 있었다. 아이들이 보호아동 시절부터 사회에서 들어온 말들을 듣고 있자니 한없이 마음이 무너졌다.
욕한 것도 아닌데, 무심코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말이었을 텐데 당하는 사람은 이렇게 비수가 돼 마음에 꽂힌다.
가장 말문이 막혔던 이야기가 있었다. 노래를 하고 싶어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연습을 하는 아이에게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니"라고 누군가 물었다더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을 용기 내 실컷 이야기했는데, 돌아온 답변이 너무 차가웠다. "네가 너무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니까 부담스럽다. 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 안 보이니? 적당히 해라."
내 눈을 보며 아이가 말했다. "부모가 잘못된 게 솔직히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잘못되게 한 것도 아니고.. 나도 어찌보면 피해자인데... 왜 나는 열심히 살아도 욕을 먹어야 할까요. 이렇게 절실하게 살지 않아도 됐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았을까 생각해요.."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다. 기사의 댓글을 봐도 울다가 억울해하다가 화나서 폭발하는 말 뿐이다. 그런 것을 보면 정말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겠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공감하고 연대하는 힘이 있어야 세상은 지금보다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