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림 Mar 10. 2024

미나리 예찬

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도시에서 시골로 시집온 어머니는 미나리를 싫어하셨다. 시장에서 미나리를 사 와 다듬으려고 하면 어김없이 거머리가 나왔던 탓이었다. 나도 그때 거머리라는 걸 처음 보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 옆에 붙어 있는 걸 좋아했던 나는 어머니가 수돗가에서 미나리를 다듬는 걸 보다가,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같이 소리를 질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나리 줄기에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도 내 나이 다섯 살쯤 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우리 가족은 먼 동네로 이사를 했다. 집 가까이에 널찍한 강이 있었는데, 강가 옆에 미나리꽝이 있었다. 미나리를 키우는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어린아이 무릎까지 물이 차 있다. 동네 친구들은 어른들 몰래 미나리꽝에 들어가서 놀곤 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린 다음, 맨발로 조심스레 들어가면 부드러운 진흙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우리는 미나리 사이를 왔다 갔다 뛰어다니다가 진흙을 뭉쳐서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던지며 깔깔대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밭 주인아저씨가 “이놈들!”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는데, 우리는 화들짝 놀라 신발을 신을 새도 없이 맨발로 줄행랑을 쳤다.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내 눈앞에는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다리에 거머리가 두세 마리 붙어 있었다. 거머리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웬 떡이냐 싶었겠지만, 가뜩이나 거머리가 싫었던 어머니는 아들 다리에 달라붙어 있는 거머리를 보시고는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거머리에 대한 어머니의 혐오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미나리를 거의 먹지 못했다. 요즘은 미나리를 깨끗하게 씻어서 깔끔한 봉지에 넣어 팔기 때문에 거머리가 있을 리가 없다고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흔드신다. 미나리를 먹으려다 거머리까지 먹는다며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


   미나리를 본격적으로 먹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난 이후였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향긋한 느낌이 나길래 집어 들었고, 이걸로 뭘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전을 한번 부쳐 보자고 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무의식 속에는 미나리와 거머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미나리전이 입으로 들어갈 때 느껴지는 향긋한 맛은 정말 좋았고, 왜 이런 걸 지금에야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마트에 갈 때마다 미나리를 사 들고 왔다.


   며칠 전에도 장보다가 미나리가 보이길래 한 봉지 들고 왔다. 오늘은 토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미나리를 꺼냈다. 자, 이제 미나리전을 만들어 볼까? 미나리를 그릇에 담아 깔끔하게 물로 씻었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다행히 거머리는 없다. 깨끗한 미나리를 칼로 송송 썰어 반죽 그릇에 담는다. 이제는 밀가루를 꺼낼 차례. 싱크대 선반에서 밀가루를 꺼내려고 하니 봉지가 옆으로 누워 밀가루 한 뭉치가 쏟아져 있었다. 아내를 불렀다.


“여보, 당신은 이게 문제야. 밀가루를 쓰고 봉지를 이렇게 접어서 클립으로 끼워놔야지. 이거 다 쏟아졌네.”     

   아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물티슈를 건넸다. 크건 작건, 계획에 없는 일은 자꾸 일어난다. 미나리전을 준비하다 말고 싱크대 선반을 청소했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


   이번에는 계란을 준비할 차례.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을 꺼낸다. 그런데 이 녀석이 계란판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꺼내 보려고 손가락에 조금 힘을 주어 보았다. 순간, 퍽 소리가 난다. 이번엔 냉장고 선반에서 달걀흰자와 노른자가 줄줄 흘러내렸다. 아내가 옆에 있다가 한마디 한다.


“여보? 당신도 이게 문제야. 계란판을 꺼내서 살살 들어야지.”

“사람이 이 정도 실수는 해주어야 인간미가 좀 있지….”

“말은 참 잘 지어내요.”


   계란 덕분에 냉장고 선반도 청소했다. 계획에 없는 일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전을 부칠 때 아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아빠, 바삭하게 해줘요!” 전은 원래 바삭하게 먹는 게 아닌데, 아들이 워낙 바삭한 타령을 많이 해서 오랜 연구(?) 끝에 아빠표 레시피가 만들어졌다.


   우선, 물에 씻은 미나리를 그릇에 담을 때는 물기를 털지 않는다. 반죽할 때 물을 따로 넣지 않기 위해서이다. 반죽을 프라이팬에 넣을 때 “자르르”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는 물기가 뜨거운 기름을 만나서 증발하는 소리이다. 바삭하게 하려면 물기를 많이 증발시켜야 하는데, 처음부터 물을 많이 넣어 반죽을 질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계란 두 개 정도를 넣어주면 미나리 자체에서 나오는 물과 함께 섞여 어느 정도 끈적한 반죽이 된다.


   반죽에는 감자전분이 꼭 필요하다. 밀가루 세 스푼에 감자전분 한 스푼 정도. 감자전분은 밀가루와 다르게 글루텐이 없어 소화도 잘되고, 바삭한 식감을 위해서는 이만한 게 없다. 작년 가을에 친구 어머니께서 주신 청양고추도 송송 썰어 넣었다. 오래 두고 먹으려고 냉동실에 넣어 두고 하나씩 꺼내 쓰는데, 매콤하면서도 미나리 향을 더 살려준다. 소금은 넣지 않는다. 어차피 간장에 찍어 먹을 테니 굳이 간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반죽이 완성되고, 이제 포도씨유를 꺼냈다. 사실 포도씨유를 쓰는 이유는 우리 집 딸의 영향이다. 딸이 세 돌쯤 지났을 때, 아이가 낮잠을 자길래 방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다. 한참 일을 하다가 낮잠을 오래 자는 것 같아 조용히 나가보았다. 이미 아이는 주방으로 나와 있었고, 전날 사놓은 포도 상자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바닥과 옷이 엉망이 된 채로, 아빠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포도를 까먹고 있는 아이! 저렇게 포도를 좋아할 줄이야. 이후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늘 아이는 포도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물건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포도씨유도 우리 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포도씨유가 부침용으로 꽤 괜찮다는 걸 안건 나중 일이다.


   프라이팬에 포도씨유를 살짝 두르고, 되직한 반죽을 숟가락으로 퍼서 올렸다. 숟가락 하나면 충분하다. 숟가락으로 반죽을 살살 눌러 최대한 얇게 편다. 반죽이 되다 보니 사이사이 구멍이 나는데, 그래도 괜찮다. 바삭한 전을 만들려면 구멍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주방에 뒤집개가 걸려 있지만 나는 사용하지 않는다.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프라이팬을 들고 “톡” 치면, 전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한 바퀴 돌아 “착”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지금은 시큰둥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이런 걸 보여주면 환호성을 질렀다. 또 해보라며 자꾸 시킨다. 아이들은 전을 돌릴 때가 되면 자기를 꼭 불러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물론 돌리다가 망친 적도 있지만, 아빠가 전을 부친다는 건 아이들에게는 큰 구경거리였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 프라이팬의 선택 기준은 무조건 ‘가벼운 것’이 되었다. 요즘은 두툼하고 무거운 기능성 프라이팬이 많이 나오지만, 그런 팬으로 전을 돌렸다가는 손목이 제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토요일 아침 겸 점심이 차려졌다. 식탁 위 각자 자리에는 미나리전을 올린 접시가 하나씩 있고, 가운데에는 달래를 듬뿍 썰어 넣은 달래장이 놓여있다. 간장 속에 들어 있는 달래를 젓가락으로 집어 미나리전 위에 올리고 같이 먹으면 진수성찬이 필요 없다.


   저녁때 미나리전을 어머니 댁에 가져다드렸다. 어머니는 웬 미나리전을 만들었냐며 한마디 하시고는 맛있다며 그 자리에서 한 접시를 다 드셨다. “세상에,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왜 안 만들어 드세요?”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한마디 하신다.


“무서워서 싫어. 거머리가 나오잖니.”

매거진의 이전글 동물은 기호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