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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Apr 21. 2024

감자말고 고구마

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감자에 대한 나의 최초의 기억은 갓 쪄낸 감자 껍질을 살살 벗긴 후, 커다란 대접에 넣고 숟가락으로 이긴 다음 설탕을 솔솔 뿌려 먹던 것이다. 주로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 형과 내가 해 먹었던 간식이었다. 뜨거운 감자는 숟가락 하나면 잘 이겨졌다. 여기에 마요네즈를 살짝 섞으면 그 부드러움이 입안과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감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감자전이었다. 감자를 통째로 갈아서 고운 체에 밭치면 물기가 빠지고, 스멀스멀해진 감자에 부추를 듬뿍 썰어 넣는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몇 덩이 덜어 프라이팬에 넓게 펼쳐 부쳐낸다. 어머니는 편리한 믹서기를 놔두고 꼭 강판에 감자를 갈았다. 옆에서 구경하던 내가 재밌겠다 싶어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가 손끝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 한 가지 종류의 식재료가 시각과 미각뿐만 아니라 그렇게 촉각까지 강렬하게 자극했던 탓인지, 감자에 대한 사랑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결혼한 후에는 감자에 대한 사랑이 잠시 주춤했다. 나는 어릴 때 고구마에 대한 추억이 그다지 없어서인지 고구마가 그리 끌리지 않았는데, 아내는 완전 고구마파였다. 어릴 적 감자 수확 철이 되면 부모님은 감자 상자를 수북하게 창고에 쌓아 두셨기에, 결혼 후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필요하면 조금씩 사다 먹지 저걸 어떻게 다 먹느냐며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비는 왕성하지 않았다. 습기가 많았던 신혼집의 특성도 한몫했다. 일부는 썩어서 진물이 났고, 일부는 상황 파악 못 하는 철딱서니처럼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하긴, 맞벌이를 했던 두 식구가 집에서 얼마나 많이 먹겠다고 감자를 상자째 사놓았던 것일까?


   우리 집 감자 소비량이 늘기 시작한 것은 둘째 아이가 좀 크고 나서다. 신혼 초 잠시 주춤했지만, 나의 감자 사랑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 해, 전국적으로 감자 농사가 너무 잘 돼서 감잣값이 폭락했다. 감자 사기 운동 비슷한 게 생겨났고, 우리 집에도 다시 감자가 상자째 들어왔다. 다행히 그때는 볕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해서, 바람 잘 통하는 곳이 있었고, 신문지를 넓게 깔고 감자를 잘 말리는 등 보관에도 신경을 썼다. 이렇든 저렇든, 이때다 싶어 하루를 멀다 하고, 어릴 때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감자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프렌치프라이에 익숙한 아이들을 위해 최대한 바삭하게 전을 부쳤고, 기호에 맞게 먹어 보라고 간장뿐만 아니라 케첩이나 머스타드소스도 동원하였다. 감자는 그 특유의 심심한 맛 때문에 거의 모든 소스와 잘 어울린다. 심심해 보이는 사람이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것처럼 감자도 그런 사람을 닮았다. 이참에 아이들 입맛에 감자의 맛을 길들여볼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감자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며 늘 고구마를 찾던 아내가 아이들보다 먼저 감자의 매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맛도 맛이지만, 특히 여름방학 때 감자는 우리 집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돌아서면 뭐 먹을 게 없냐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나이가 될 무렵, 일찌감치 감자의 맛에 길든 아이들은 감자가 지겹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감자가 떨어져서 카레, 닭볶음탕, 찜닭에도 감자 대신 고구마를 넣으면, 제발 고구마말고 감자 좀 넣어 달라는 소리를 하였다.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서 먹는 수준은 이미 예전 얘기가 되어 있었다.


“거봐, 고구마 보다 감자가 더 맛있다고 했잖아.”


   아내에게 늘 이런 말을 하던 내가 어느 날, “감자말고 고구마!”라고 말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벌써 5년째, 나는 점심으로 고구마를 먹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2020년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나는 코로나 확진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두 아이가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학교에 연락했더니, 아빠의 자가격리가 끝날 때까지 등교하지 말라는 통보가 왔다. 초등학생 아들은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으나, 고등학생 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학교에 있는 책들을 모두 집으로 가져오고, 선생님이 보내준 수업 자료와 단짝 친구가 보내준 노트를 보면서 아이는 답답한 마음을 참아가며 다음 달에 있을 기말고사 준비를 했다. 아빠 때문에 무슨 고생인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2주 후 무사히 격리가 해제된 첫날, 학교를 다녀온 딸의 얼굴은 아주 어두웠다. 하루 종일 쉬는 시간도 없이 과목별로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빠진 숙제와 수행평가를 받아야 했다고 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가 눈물이 터진 결정적 이유는 실험과목이었다. 조별 실험이 수행평가였는데, 아이는 실험을 하는 날 등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행평가 점수가 0점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너 하나를 위해서 조별 아이들이 다시 실험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하셨다고 했다.


   아빠가 특정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아이가 아무 잘못 없이 0점을 받아야 한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데,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학교에는 절대 얼씬도 하지 말라는 아이의 부탁을 뒤로하고,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청했다. 책임질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여차저차 하여 또 며칠이 흘렀고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제부터는 어디 가서 마스크를 벗고 뭘 먹지도 말아야겠다 싶었다. 답은 하나. 이제부터는 도시락이다.


   아내에게 부탁했다.


   “나 내일부터 도시락 좀 싸줘요. 고민할 것 없이 감자만 싸주면 돼. 난 감자는 안 질리거든.”


   아내는, 감자만 먹고 어떻게 사냐며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내 주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감자가 너무 맛있다, 세 끼 모두 감자만 먹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 매일 도시락 반찬을 걱정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냐, 등등 그럴듯한 근거를 늘어놓았다. 아내는 며칠 못 갈 거라고 하며 못 이기는 척 다음날 도시락을 싸주었다. 센스있게 방울토마토, 삶은 달걀, 그리고 두유를 같이 넣어주었다.


   며칠 못 갈 줄 알았던 삶은 감자 도시락을 3개월 남짓 먹고 있던 때, 친구가 고구마 한 상자를 보내왔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고구마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가 아주 잘됐다고 했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아내가 한입 먹어 보더니, 너무 맛있다며 당장 몇 상자를 더 사야겠다며 문자를 보냈다. 고구마 상자가 쌓이자, 도시락은 드문드문 감자 대신 고구마로 채워졌다. 극적인 반전이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적응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고구마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사실 식은 삶은 감자는 매력이 없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한 김을 후각으로 느끼며, 후후 불어가며 입안에서 살며시 부서지는 부드러운 감촉은 오직 갓 쪄서 내온 뜨거운 감자에서만 맛볼 수 있다. 그렇게 먹어야 하는 감자를 사무실 냉장고에 너덧 시간 넣어 놓고 점심때 먹으면 전혀 다른 맛이 난다. 딱딱하고 미묘한 떫은맛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해도 갓 꺼낸 뜨거운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몰랐던 감자의 비밀을 알아냈다는 것은 가슴 두근거리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식은 감자의 퍽퍽함에 질려갈 무렵, 즙이 많은 달콤한 호박고구마는 너무나 돋보였다. 먹는 요령이 없을 때는 가끔 목이 메기도 했지만, 과일과 함께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식은 고구마는 감자처럼 퍽퍽하지도 않고, 떫은맛도 없으면서, 오히려 달콤함은 더했다. 맛있었다. 이거야말로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고구마의 비밀이다. 아내에게 부탁했다.


“내일부턴 감자말고 고구마!”


   코로나19 유행이 어느 정도 지나갔지만, 고구마 점심 도시락은 이후로 지금까지 5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 고구마 도시락을 먹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고구마 도시락을 꺼내고 헤드폰을 쓴다.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서 고구마를 한입 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여유롭게 창밖을 내다본다. 그러면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봄이 되어 하루하루 연두색 싹을 틔우는 나무를 보며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은 경이로운 체험이다. 세찬 비가 오는 날,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도 좋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뭐라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도 공기 중에 퍼져 창문으로 들어온다.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도 한몫했다. 캡슐 하나로 끼니를 때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장난처럼 말하곤 했는데, 사실 진심이 담긴 농담이다. 너무 맛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면, 둔감한 나의 미각은 맛이 있고 없고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가끔 누군가 밖에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할 때도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고구마를 먹는 일상도 즐겁긴 하지만 그런 제안을 해 주는 사람은 일종의 구세주라고나 할까. 일상의 틀을 살짝 깨주고, 주파수를 흔들어 리듬감을 주는 존재이니 말이다. 이런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는 없으나, 늘 고구마 수확 철이 되면 몇 상자씩 공급해 주는 친구가 있는 한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 아저씨가 준 고구마가 다음 주에 떨어질 것 같은데, 주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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