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림 May 09. 2024

굿모닝 멧돼지

good, communicate, conflict

   등산의 재미 중의 하나는 새로운 길을 가보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등산로는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한 좁은 길에 낙엽도 수북하여 이곳이 길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어렵지만, 그런 길을 가다 보면 뭔가 탐험하는 느낌도 들고, 산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날도 호기롭게 그런 재미를 찾았다. 해 질 무렵이라 사람도 없으니 잘됐다 싶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멀찌감치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어떤 아저씨가 두 팔을 들고 나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멈칫했고, 아저씨는 천천히 두 팔로 커다란 타원을 그린 후 손가락으로 옆쪽 수풀을 가리켰다. 버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잎이 흔들리는 모습. 성인 두 명을 합친 정도로 큰 시커먼 멧돼지가 땅을 파고 있었다. 심장이 고동쳤지만 나는 조용히 알겠다는 손짓을 하였다.     


   멧돼지는 시력이 나빠서 우연히 만나면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10분 남짓, 우리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 있었고, 멧돼지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다행히도 천천히 다른 쪽으로 사라졌다. 멧돼지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던 그는 이제 움직여도 좋다고 손짓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쑥대밭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나에게 돌진하는 것 같아 심장이 다시 쿵쾅거렸다.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풍광이고 뭐고 뜀박질하듯 산길을 내려오고 말았다. 한참 내려와서 넓은 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 아저씨와 내가 교환했던 손짓, 눈빛, 표정들. 두 사람은 어떻게 말없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잠깐의 손짓이 무엇이길래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작은 손짓 하나가 생명을 지키는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소통한다는 뜻의 영어 단어 communicatecommon(공동의)에서 유래되었다. common함께라는 뜻의 ‘com-’간다는 뜻의 ‘mei-’가 합쳐진 말로, ‘함께 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communicatecommon의 동사형인 셈이므로,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여 함께 간다는 속뜻이 있다. 앞서가던 아저씨가 멧돼지가 있다는 정보를 혼자만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좁은 길을 휘젓고 가던 나는 분명 습격을 당했을 것이고, 한바탕 소란에 앞서가던 아저씨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소통을 거부(?)한 후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후배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언제는 깨가 쏟아지는 사랑 얘기를 한없이 하던 사람이 안부를 묻는 인사에 느닷없이 한숨부터 내쉬었다. 여자친구와 오랫동안 만나왔다는 걸 알았기에 헤어진 이유가 더욱 궁금했다.     


형도 알지? 제가 봉사활동 하는 거. 그게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 그런데, 여자친구랑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항상 혼자 다녔다니까. 3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려 봤는데, 이 사람이 앞으로도 그걸 함께 할 것 같지 않더라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암시를 줬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암시만 줬으면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지. 여자친가 봉사활동 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네가 하는 거 인정해 준 거잖아. 같이 가자고 말은 해봤어?”     


“3년을 만났는데 내가 굳이 말을 해야 하나? 내가 뭘 원하는지 알면서 안 하는 거지.”     


그렇게 돌려 말하면 모를 수도 있지. 같이 가자고 직접 말했어야지.”     


에이… 그런 걸 어떻게 말해.”     


어떻게라니? 직접 말해보고, 안되면 싸움이라도 해야지.”     


싸움? 알잖아. 그런 거 내가 잘 못 하는 거.”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면 갈등이 일어날 것 같으니, 아예 헤어짐을 택했다는 것이다. 갈등을 피하려고 함께 가기를 거부하다니 …. 결과적으로, 힘들다고 위로받고 싶어 했던 후배에게 오히려 핀잔을 주고 말았다. 집에 와 그의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해 보니 나라고 특별히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괜히 그랬나 하며 후회했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 많은 통로를 닫아왔다. 그럴 때마다 몇 날 며칠 속앓이를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닫은 문을 내가 열기는커녕, 남이 열어주기를 바랐던 부끄러운 일들이 생각났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생각해 보면 소통의 문을 닫고 여기저기에 하소연해 봤자, 괴로움과 아픔은 오로지 내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고통이라는 영어 단어 pain대가를 치른다’(pay)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소통의 통로를 막으면 대가를 치르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하지만 갈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nflict를 좀 살펴본다면, 조금의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말에서 갈등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칡과 왼쪽으로 올라가는 등나무가 만나 얽히고설킨다는 뜻이 있지만, 영어의 conflict같이(con-) 때린다(-flict)’는 뜻이다. 어찌 보면 영어가 우리말보다 더 과격한 느낌을 주는 것도 같다. 그런데, 방향을 좀 바꿔서, 때리는 대상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오히려 갈등을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갈등을 통해 나의 모난 곳을 발견하고 깎을 수 있다면 굳이 통로를 닫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영어에서는 모든 인사를 good으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good은 단순히 좋다는 뜻을 넘어, 좋은 것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goodgather(모이다), together(함께)와 어원이 같은데, 이 단어들은 함께한다라는 뜻의 고대어 ‘ghedh-’에서 유래한다. 그러니 굿모닝하고 인사하면, “저는 오늘 아침 당신과 함께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좋은 것의 진정한 의미는 함께 소통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니, 이런 것이 언어 속에 지혜를 담은 인류의 멋이 아닐까 싶다. 내일 아침에는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굿모닝하고 인사를 해 봐야겠다. 세상과 연결되는 첫 신호가 되기를 바라며.

이전 12화 나를 나답게 만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