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에세이: art, perfect
큰아이가 방에서 한숨을 쉬며 나와서는 아무말 없이 아내와 내가 방금 사 온 탄산수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교환했다. 사실 점심을 먹고 나니 속이 더부룩하여 나는 아내에게 탄산수를 사러 마트에 같이 가자고 했다. 3월 어느 따뜻한 봄날, 이렇게 우리는 탄산수를 핑계 삼아 시장 구경도 하고, 꽃씨도 사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개천가를 산책했다. 그리고 탄산수 한 병과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아이들을 부르고 나자 바로 벌어진 일이라니 …. 하긴 탄산수 덕분에 즐거운 산책을 했으니 그 정도는 딸에게 양보해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산책을 하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
“예술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 공간을 자유롭게 채울 수 있으니까.”
예술이 영어로 뭐냐고 물으면 모두 아트(art)라고 말하지만, 정작 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이 모두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쓰레기인데 어떤 사람은 그걸 예술이라고 한다. 쓰레기가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예술적 경지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렇게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가 또 있을까? 지금껏 한 번도 국어사전에서 예술을 찾아보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술을 자유라고 한 아내의 말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저렇게 딱딱하게 정의해도 되는가, 하는 삐딱함도 올라왔다. 이참에 ar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아야겠다.
우리말에서는 예술 중에서도 그림이나 조각 등의 영역을 미술이라는 용어로 따로 쓰지만, 영어에서 art는 미술이라는 뜻과 예술이라는 뜻을 모두 포함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술은 art라고 하고, 미술을 비롯한 음악, 무용, 연극, 문학 등을 모두 아우르는 말은 복수형을 써서 arts라고 한다. 그런데 arts는 언어학, 문학,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을 뜻하기도 해서 오늘날 대학에서 교양 과목을 liberal arts라고 하고, bachelor of arts는 대학 졸업자에게 주는 학사학위 중 문학사를 의미한다. art가 어떻게 이런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용어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인간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사상이 나타난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4세기 서양에서 art는 인간이 만들어 낸 기술과 학문을 뜻하였다. 이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과 구별되는 말이었는데, 오늘날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과 구별하여 과학 이외의 학문, 즉 인문학을 뜻하는 말로 arts가 사용되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이 만든 것이었고 자연은 신의 걸작품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사람들은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기술을 뜻하는 말이 필요했을 것이다. 고대어에서 ‘ar-’은 무언가를 서로 잘 맞춘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팔을 뜻하는 arm도 여기에서 나온 말인데 관절이 정교하게 서로 잘 맞추어져 있는 신체 기관인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팔은 생존을 위한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었기에, arm은 ‘무장하다’는 뜻도 있고 복수형 arms는 무기를 뜻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인간이 만든 기술’을 뜻하는 말을 여기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서로 정교하게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 그러기에 배움과 연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술. art는 이미 13세기에 이런 뜻이 있었다.
무엇이 서로 잘 맞추어져 있다는 뜻의 고대어 ‘ar-’은 오늘날 다양한 단어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우선 관절을 뜻하는 arthritis, 관절처럼 마디마디 또박또박 말을 한다는 뜻의 articulate, 사람이 만든 인공물을 뜻하는 artifact, 인공적이란 뜻의 artificial, 마디마디 나누어져 쓰여 있는 신문 기사를 뜻하는 article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모니(harmony)는 그 구성물들이 정교하게 연결되어있는 조화로움을 뜻한다. 또 order는 구성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알맞게 있는 상태, 즉 순서와 질서를 뜻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명령이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질서 있는 사회의 구성원인 상관과 부하와의 관계를 상상하면 왜 그런 뜻이 있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리고 ‘보통의, 평범한’이라는 뜻의 ordinary는 모든 필요한 요소들이 정교하게 결합하여 알맞은 곳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속뜻을 담고 있으니 평범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어찌 됐건 art는 언어의 역사에서 그 뜻이 점차 축소되고 협소해지는 운명을 맞았다. 자연이 아닌 인간이 발견하고 만든 기술과 학문에서 미술, 음악, 문학 등의 영역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이런 의미의 예술도 더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예로 데이비드 코피 교수가 만든 EMI(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소개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바흐의 음악을 모방하여 작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하루에 바흐 풍의 합창곡을 하루에 5,000곡을 작곡하는 실력이 있었고, 이 중 하나를 한 음악 축제에서 기계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연주했을 때 사람들은 흥분했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기계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사람들이 구별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개최했던 음악회에서 사람들은 기계의 작품을 사람의 작품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EMI가 만든 첫 앨범 『컴퓨터가 작곡한 고전음악』은 선풍적인 인기로 팔려나갔고, 더 나아가 데이비드 코프의 최고 걸작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Annie는 스스로 학습을 하며 음악의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장르로 확대하면서 작곡을 하였다고도 했다.
그런데 예술이 인간을 뛰어넘어 컴퓨터로 갔을 때 그것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컴퓨터 프로그램 EMI가 작곡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바흐가 직접 작곡한 곡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와 같은 감동을 얻을 수 있을까? 음악 축제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연주된 곡이 바흐가 아닌 컴퓨터가 작곡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 큰 실망과 함께 화를 냈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 점을 너무 가볍게 넘어간 듯하다. 사람들은 왜 화를 냈을까? 사람들은 예술 작품을 접할 때 결과만을 보지 않는다. 그 결과를 위해 땀을 흘린 인간의 고뇌를 생각하고, 그 예술가가 살아내었던 역사를 보고, 그 작품과 함께한 예술가의 감정을 느낀다. 예술은 작품을 통해 과정과 과정을 연결한다. 사람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삶의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비록 그것이 환상이고 상상의 산물이라서 기계가 한 것에 속을지라도, 인간이기에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과의 소통, 그것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세돌은 인공지능과 바둑 대결을 한 후, 2019년 바둑계를 은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바둑은 둘이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인공지능과의 대결) 무슨 작품이 되겠나.”
바둑을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이에게 이 말은 큰 울림이 있었다. 한번 시작하면 보통 4시간 이상 지속하는 바둑을 승부가 아닌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라니, 이 어찌 그냥 흘려 넘길 수 있을까. 바둑은 그 과정이 삶의 축소판이다. 공격과 방어라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무언의 대화, 은유와 암시, 양보와 결단, 예의와 존중, 이 모든 인간다움이 녹아들어 가 있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말에서 완벽(完璧)이란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이지만 ‘완벽한’이란 뜻의 영어 단어, perfect에는 조금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고대어에서 ‘per-’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는 뜻이고, ‘fect’는 만든다는 뜻의 고대어 ‘facere’가 변형된 말이다. 그러므로 perfect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것을 만들어 완성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어떤 그릇의 밑바닥에 구멍이 나 있으면 찌개를 담기에는 큰 흠이지만 화분으로 쓰기에는 그보다 적절할 수 없듯, 흠이란 누가 보고 어떻게 쓰냐에 따라 흠이 될 수도 있고 꼭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여 끝까지 해낸다는 관점에서 보면 흠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시작하고 매듭을 짓는다는 것, 이것이 완벽함이라니 이보다 큰 울림을 주는 단어가 있을까? 이렇게 보면 완벽함이란 결과이기보다는 과정이다.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담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셀 수 없는 도전과 시도, 실패와 불운, 성공과 행운, 고민과 결단, 갈등과 화해, 좌절과 기쁨이 그 기나긴 과정 속에 녹아 있을 것이다. art가 무엇이 서로 잘 맞추어져 있다는 뜻의 고대어 ‘ar-’에서 유래되었다면, 잘 맞추어진 그것이란 바로 하나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하나의 과정이 하나의 관절을 이루고, 다양한 관절이 모여 서로서로 연결되었으니 나는 이제부터 예술을 이렇게 불러야겠다.
예술이란 과정을 연결하는 것,
그러므로 작품이란 “퍼펙트”라고.
그래서 예술은 인간 삶의 모든 과정을 연결하는 것,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퍼펙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