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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Jun 02. 2024

구멍 뚫린 담장

공림의 생각스케치

   ‘눈감고도 간다’라고 하면 익숙한 곳이라 많이 알고 있다는 말일 텐데, 이 말은 익숙함이란 그저 기존 정보가 재생될 뿐, 새로운 변화는 눈치채지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익숙한 곳일수록 에너지를 적게 쓰려는 동물적 본능 때문이겠지만,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다니, 익숙함은 그리 자랑할만한 게 못 되는 듯하다.     


   그동안 매일 같이 지나가면서도 몰랐던 걸 이제야 발견하고 말았다. 예전 저곳에는 두툼한 벽돌 담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담장 사이 사이에 구멍이 나 있다. 이끼와 곰팡이로 시커멓던 담장은 언제 사라졌을까? 새로운 철재 담장에 있는 구멍으로 빛이 새어 나온다. 멀리서 그 빛이 내 눈과 마주쳤을 때, 나는 산속 멧돼지의 눈에서나 볼 수 있는 섬광을 보듯, 놀라 멈추고 말았다. 속이 보일랑 말랑, 빛을 품은 담장이라니. 마치 모자이크나 퍼즐 놀이처럼, 구멍 사이로 들여다보니 담장 안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런 담장은 매력 있구나. 어두운 벽돌 담장은 "이곳에는 관심을 두지 마라"며 소통을 거부했을 테니, 저곳은 속이 얼마나 탔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구멍 뚫린 담장. 답답한 속 마음에 이제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갈 수 있기를 …. 나도 너처럼 마음에 구멍을 뚫어 볼 테니, 가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네 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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