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림의 생각스케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리면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전광판 같은 메뉴 앞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 우동, 국수, 냉면, 라면 등 면 요리만 모아 놓은 큰 글자 밑으로도, 무슨 우동 무슨 라면 등등 작은 글자가 끝없이 이어지니, 그 많은 메뉴를 다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음식을 고르는 것도 참 귀찮은 일이 되었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르고 막상 음식이 나오면, 들인 시간과 수고가 아까워서일까? “맛이 어때?”하고 물으면 “그저 그렇지 뭐,” 이런 식의 대화가 늘 이어지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메뉴 선택도 경험이라면 경험일까? 이제는 신속하면서도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메뉴를 반사적으로 고르게 되었다. 바로 비빔밥. 따끈한 돌솥비빔밥이면 더 좋다. 간단하면서 정갈한 재료, 그 어떤 채소와도 잘 어울리는 고추장과 참기름의 부드러운 조화, 그리고 어디를 가든 다 있으면서도 맛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점은 덤으로 좋다.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 중에는 먹으려 하지 않았을 뿐, 사실 비빔밥은 내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전문 음식점에서처럼 모든 재료를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밥 위에 예쁘게 올려놓을 수도 있겠지만, 집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기에 간편하면서도 매번 다채롭게 먹을 수 있다. 상추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부터, 봄에 나오는 다양한 나물, 아삭한 콩나물부터 새콤한 신김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이 비빔밥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10년 가까이 도자기를 빚다 보니, 집에 그릇들이 꽤 많이 쌓였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필요한 도자기 그릇을 만들었는데, 이제 와 보니 이 그릇들이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주로 먹는 음식을 담는 그릇과 즐겨 먹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밥과 국은 매일 먹어도 지겹지 않지만, 아무리 비빔밥이 좋다고 매일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밥, 국, 반찬을 담는 그릇은 늘 우리와 함께하는 친숙한 일상을 담는다면, 비빔밥을 담는 깊고 넓은 그릇은 즐거운 축제를 담아낸다. 오늘은 그 즐거움을 이 도자기에 담는다. 비빔밥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