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꼼지락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살던 집 뒤에는 톱, 못과 망치, 삽, 낫 등 온갖 위험한(?) 도구들이 보관된 곳이 있었는데, 나는 틈만 나면 거기서 뭘 만들고 있었다. 위험한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그곳 출입을 자유롭게 허락해준 부모님이 새삼 고맙다. 아주 오래전, 그곳을 떠나고, 어른이 되어 아이를 기르는 나이가 되었어도, 그때 그 버릇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신없었던 20대와 30대를 뒤로하고,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니, 그곳에 흙과 나무를 모으고 각종 공구를 채워 넣으며 살게 된다. 그동안 흙으로, 나무로 이런저런 것을 만들면서, 어느 순간 오래된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소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수저통: 밥의 생명을 담다
딸과 둘만 있었던 어느 휴일 오후, 밥 먹으라는 말을 듣고 방에서 나온 딸이 식탁을 보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런 황당한 순간이 있을까? 밥 먹으라고 부르는 입장이 되어 보니, 어릴 때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밥 차리고 부르는 쪽에서는 어차피 불러봐야 좀 있다가 나올 게 뻔하니 조금 일찍 부르게 되고, 부름을 받는 처지에서는 한창 무엇을 하고 있는데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나오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날은 부르기가 무섭게 딸이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왜 들어가지? 가만히 보니 찌개는 아직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었고 식탁에는 수저가 없었다. ‘수저가 없으면 가져다 먹으면 되지. 나 같으면 다른 식구들 것도 놔 주겠다.’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찌개를 가져다 놓고 수저를 놓는 시간도 아까운, 급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던 건 나도 저맘때 종종 그랬기 때문이다. 황당한 마음을 뒤로하고, 예전의 내가 생각나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를 식탁에 놓고, 수저도 놓았다. 또 딸을 부른다.
“잠깐만, 이거 좀 끝내고 갈게요.”
이번에는 늦게 나오려는 모양이다. 기다리다가 멍하니 수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매번 수저는 가장 나중에 놓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밥이 생명이듯, 밥에게는 수저가 생명일 텐데, 생명이 없는 밥을 먹으라고 한 건가? 어찌하여 수저에 대해서는 지금껏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갑자기 수저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특별 대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예쁜 집을 하나 지어주기로 했다.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입으로 들어가는 수저이니, 수저의 이미지답게 집도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방도 두 개 정도는 만들어 줘야 여유로워 보일 것 같고, 바람이 잘 통하는 창문도 여기저기 필요하다. 사람 집도 그렇듯 물길도 내주어야 한다. 흙 구석구석에 마음도 담는다. 이 정도면 밥 먹을 때 수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지 않을까.
수저받침: 부모의 욕심을 담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마침 검은 콩을 많이 넣은 밥이 나왔는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밥이었다. 우리 집이었으면 콩은 조금만 달라고 했을 텐데, 큰아버지가 무서워서 말도 못 꺼냈고, 더군다나 콩을 골라낸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였다. 하는 수 없이 눈을 딱 감고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동네 옆집에서 놀러 오신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내 속도 모르고, 어린애가 어떻게 저렇게 밥을 잘 먹냐며 칭찬까지 했더랬다. 그 순간 나는 밥상 앞에서 먹은 걸 다 토해 버리고 말았다. 밥상이 온통 엉망이 되었고,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됐기에 그 후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른이 돼서 첫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먹성 좋은 다른 집 아이가 부러울 때가 많았다. 아이가 작게 태어나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부모의 욕심이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아이는 항상 양을 다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잘 먹는다며 온갖 칭찬을 동원해서 많이 먹였다 싶으면 잠자리에서 토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옛 기억이 생각나서 ‘먹을 때는 칭찬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을 했지만 부모의 욕심은 쉽게 포기하기가 어려운 가보다. 둘째를 키울 때는 뭐든 잘 먹으면 좋다고, 먹고 싶다는 걸 다 먹였더니 달고 기름진 것이 아이의 입맛이 되어버렸다. 아, 참으로 어렵다.
맛없는 것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재미있는 수저받침을 생각해 봤다. 이번에도 수저이다. 우선 아기 돼지를 음각으로 새긴 도장을 만들고, 초벌구이한 다음, 사각 흙 판에 찍어내었다. 숟가락질할 때마다 포동포동한 아기 돼지를 보면 입맛이 돋아나려나? 부모가 되니 별생각을 다 하게 된다.
장난감 상자: 아이의 세상을 담다
뭔가를 모으는 것이 재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내 나이 여섯 살 때였다. 골목이 거미줄처럼 복잡한 작은 동네에서 우리는 방 두 칸짜리 전셋집에서 살고 있었다. 방 하나는 창고로 쓰고 있었으므로, 네 식구는 몸을 부대끼며 한방에서 지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작은 녹색 플라스틱 상자가 있었으니, 그곳은 부모님이 사주신 작은 자동차와 이따금 친척분이 놀러 오시면 사주신 로봇이 모여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나 이외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 장소였고, 내 재산이 몽땅 들어 있는 금고이기도 하였다. 간혹 다른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방 하나가 온통 내 차지가 될 때면, 내 비밀 상자를 풀어내어 바닥 한가득 펼쳐 놓고, 길을 내고, 건물도 지었으며, 전투기가 날고 로봇들이 전투를 벌이는 세상을 만들어 냈다. 전날 밤 꿈속에서 나왔던 끝없는 황무지를 자동차는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렸고, 로봇은 연약한 꼬마를 끌어내리는 중력에 저항하듯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골목길에서 한창 뛰어놀다 집으로 들어온 어느 날, 나의 세상이 온데간데없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한바탕 울고, 같이 찾으러 가자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동네를 몇 바퀴 돌아도 내 세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졌던 내 인생의 첫 번째 경험은 그러했다. 누가 가져갔을까? 그 일은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첫 경험이기도 하였다.
우리 집 막내가 그때 내 나이가 되었을 때쯤, 그 시절 잃어버린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때보다 더 크고, 더 튼튼하고,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세상을 담는 상자. 어린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우리 집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집에서 쓰다가 못쓰게 된 서랍을 재활용하여 만들어 보기로 했다. 서랍을 분해하여 보니, 나무가 전혀 변형되지 않고 잘 건조되어 목재로 쓰기에는 아주 훌륭하였다. 아이들에게는 초록색 스테인 칠을 맡겼다. 아이들이 이곳에 자신들의 멋진 세상을 만들어 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