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저곳에는 흙이 없었다. 건물 5층, 외벽에 화재 대피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난간.
처음에 사람들이 물 샐 틈 없이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을 단단하게 붙이고, 페인트도 예쁘게 칠했을 공간.
그곳에는 오랫동안 사람 대신 비와 바람이 살았다. 바람은 매일 조금씩 타일을 벌리고, 비는 그 틈을 살짝살짝 흘러갔을 테지.
그들은 아마도 쾌감을 느꼈을까?
가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부스러기, 공기 중을 떠돌던 먼지, 이곳을 안식처 삼았을 벌레와 그들의 부산물들이 이곳을 채우고 또 채웠으리라.
쓸모를 다해 하찮게 버려진 것들, 해충의 오명을 쓰고 멀리멀리 쫓겨난 존재들, 냄새난다며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차별받고 모욕당한 그 모든 것들이 이곳을 채우고 또 채웠으리라.
그러나 그들도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풀잎으로 써 내려갔다. 한 줄기 쓰고, 두 줄기 쓰고, 세 줄기 쓸 때, 한 줄기는 썩고, 두 줄기도 썩어, 다시 네 줄기를 쓰고, 다섯 줄기를 쓴다.
그렇게 하기를 몇 해, 단정했던 타일과 시멘트가 드디어 갈라지고 갈라졌다.
“너희들이 말하는 단정함이란 무엇인가? 생명을 키워내지 못하는 그 깨끗함이란 무엇인가?”
오늘도 그들은 작은 잡초로 글을 쓴다. 생명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