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림의 생각스케치
10년 정도 자란 우리 집 식물 대장, 고무나무는 알고 있었다. 여기가 인도네시아 어디쯤 있는 숲속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가지가 풍성하게 나도록 가지치기도 하며 관리를 해주었어야 했는데, 식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놔두었더니, 그동안 대장은 여기가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숲속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저 위로만 뻗어 올라갔다. 그러다 우리 집 거실 천장을 10cm 정도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었던 작년 이맘때쯤, 대장은 갑자기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위로 자라기를 그만두고 옆으로 삐쳐나온 작은 가지에 양분을 몰아주었다. 옆 가지는 본줄기를 제치고 굵어져 옆으로 뻗었고, 급기야는 그 무게로 허리가 구부정해지기에 이르렀다. 지지대를 받쳐주었건만 구부정해지는 대장의 허리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게 ‘여기 좀 봐, 뭐라도 좀 해봐’라는 메시지인지는 한 달 전쯤에야 눈치챘다.
본줄기를 잘라내고, 옆으로 난 가지도 쳤다. 눈물 흘리듯 고무액이 줄줄 흘러나오는데, 정이란 게 뭔지, 본줄기는 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에 물을 붓고 담가주었다. 가끔 컵 물을 갈아주고, 뿌리가 언제 나올까, 오매불망 기다린 지 이제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아기 손톱 같이 뿌리가 하나둘 나오더니, 일주일 전부터 잔뿌리가 급속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보니 이제야 나름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덥수룩한 모양이 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너는 가만히 있는 다른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가만히 있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며칠 전 나에게 저런 말을 했다. 내가 정말 그런가? 나무가 구부정해질 때까지 놔둔 걸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직접 말하지 않으면 못 알다 듣는다며 아내에게 한마디 들었던 적이 생각난다. 저 덥수룩한 수염 같은 뿌리는 빨리 흙에 심어달라는 말이겠지? 내일은 화분을 하나 마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