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두 명이 걸어가면 어깨를 부딪쳐야 하는 옹벽 밑 좁디좁은 인도가 있다. 비가 오는 날, 친구끼리 걸으면 우산 하나를 같이 써야 지나갈 수 있는 길. 만약 싸움이라도 한 부부라면 우산을 같이 쓸지, 앞뒤로 떨어져 갈지 고민해야 하는 길. 눈이 오는 날,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을 바라보며 누가 먼저 우산을 접어야 할지 치킨게임을 해야 하는 길. 혹시나 썸 타는 연인라면 이 길을 꼭 가보라고 추천할 수밖에 없는 길.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가 보다.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냈다.
“눈비가 오면 비좁으니, 인도 위에 덮개를 설치해 주세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 모두가 우산을 접어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만들어 주세요.”
작년 여름, 그 무더위에 아침부터 땀 흘려가며 인도 위에 덮개를 설치한 지가 벌써 일 년 남짓 지났다. 큰 변화였지만 금방 익숙해지는 것이 사람인가. 1년 동안 거의 매일 걸어간 길이라, 그 길이 그 길이라고 지나친 지가 오래…. 오늘 오후 길을 걷다 하늘이 예뻐 올려다본 순간, 덮개에서 머리카락 두 개가 내려와 있었다.
1년 동안 덮개 위에 쌓인 낙엽과 흙먼지 속에 씨앗이 떨어졌나 보다. 덮개 밑으로 저렇게 머리가 자라 내려왔다. 내년엔 머리가 더 풍성해질 수 있을까? 더 풍성해지면 어떤 작품이 펼쳐질까? 한참을 서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기다란 두 줄기 머리카락을 쳐다보았다.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내 어깨를 스쳤지만, 아랑곳없이 나는 멍하니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설렘을 느꼈다. 변하지 않는 모나리자보다 변하는 잡초가 나를 더 설레게 한다. 기왕이면 빠지기보다는, 더 풍성히 자라는 쪽으로 변하면 좋으련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 먼지 쌓인 앨범을 펼친다. 초등학교 입학식, 중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교 졸업식…. 나는 키가 자랐고, 아버지는 머리카락이 빠졌다. 나 또한 그런 길을 지금 가고 있겠지. 언젠가, 빠지고 떨어지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똑같은 설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여름 피어났던 것들이 사라질 준비를 하는 이 가을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