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추억

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by 공림

오늘따라 책상이 지저분하다. 그때그때 마다 급하게 적어 놓은 메모지가 주범이긴 하지만, 혹시 잊어버릴까 싶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고는 내성이 걸린 것처럼 보고도 못 본 척한 메모지도 있다. 혹시나 나중에 볼까 하여 모아둔, 때 지난 자료 뭉치도 볼품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 방금 내린 따끈한 커피를 마시려다가 책상 정리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잔을 두고 마치 다도의 예라도 행하듯 단정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딱 마시기 좋은 온도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내듯 커피는 계속 코를 자극했다. 조금만 기다려. 정리 좀 해 놓고. 찬찬히 정리하려는 마음이 조금씩 급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다 커피 향 때문이라고 얼버무렸다.


차분하던 마음이 달리기를 시작할 때가 있다. 마무리할 무렵이 되면 늘 그랬다. 편안한 마음으로 숙제를 시작했지만 마칠 때쯤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졸음을 쫓으려고 마신 카페인의 효과가 그제야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그 고단한 숙제를 곧 끝낼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인지, 이미 속도가 붙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다가올 때도 그랬다. 달력을 지우며 고대했던 군대 전역일, 비행기를 타고 내 생애 가장 멀리 날아가던 첫날, 지금 사는 세상에 마침표를 찍고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줄만 알았던 결혼식 날…. 그런 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 근육이 약해졌나 보다. 마무리는커녕 시작하기도 전에 뛸 준비를 한다. 오늘도 종일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인생의 굵직한 매듭을 지을 만한 대단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소하고 귀찮은 일로 빡빡하게 채워진 일정표를 보고만 있어도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는 듯하다. 하루의 일정을 시작하기 전, 잠시만이라도 여유 있게 커피 의식을 해볼 참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식은 처음부터 사치에 불과했다. 널브러진 책을 한쪽에 쌓고 쓸모 없어진 메모지를 버리려는 순간, 커피를 담은 텀블러가 컴퓨터 키보드 위로 넘어졌다. 팔꿈치에 눈이 달리지 않은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쏟아지는 커피는 제법 속도가 빨랐다.


재빨리 텀블러를 다시 세워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그 시간에 키보드부터 빼서 커피를 털어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커피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진한 향은 커피부터 마시라는 경고였다. 키보드를 닦고 드라이기로 말렸지만, 컴퓨터에 연결하는 순간 누르지도 않은 숫자 8이 하염없이 입력되고 있었다. 커피에 취한 키보드는 더 이상 제정신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희한한 방식으로도 찾아왔다. 커피를 머금은 책상 매트는 하루 종일 천연 방향제 역할을 했다. 아침부터 불쑥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은 방 안 가득 커피 향이 좋다며 일을 마치고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정은 더욱 꼬여만 갔다. 오늘따라 쓸데없는 광고 문자와 스팸 전화는 왜 이리 많은 걸까. 정신은 여기저기 갈라졌고, 얼굴은 표정을 관리하느라 바빴다. 한번 달리기 시작한 마음은 가속도가 붙었다. 심호흡은 역시나 소용이 없다.


애지중지하던 키보드였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해 왔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물건이라지만 그 덕에 온갖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존재였다. 오래 신은 신이 내 발에 꼭 맞게 헐렁해지는 것처럼, 오래 쓴 키보드는 힘 빠진 내 손가락에 꼭 맞게 헐렁해져 있었다. 펜이라면 서랍 속에 있는 아무 펜이나 하나 꺼내면 그만인 것을…. 싼 거라도 당장 구해와야겠기에 발걸음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급하게 사 온 키보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뻑뻑했고, 오타가 많이 났다. 신경질적으로 백스페이스를 치는 소리가 옛날 타자기 치는 소리처럼 울렸다.


그렇게 여차저차하여 오늘은 점심도 못 먹고 저녁을 맞았다. 마음이 엉킨 데다 허기진 배를 급하게 채웠더니 오랜만에 급체도 찾아왔다. 이쯤 되면 약은 하나. 마음도 풀고 속도 푸는 데는 산책만 한 게 없다. 작년 6월에는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것 같은데, 올해는 무슨 영문인지 선선한 가을바람 불 듯 저녁이 시원하다. 뭐든 긴장하고 마음이 급해지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작은 실수가 불씨가 되어 이리저리 퍼지기 전에 방화문을 내려야 했는데, 허둥지둥 몸만 겨우 피한 느낌이다.


해도 늦게까지 떠 있고 날씨까지 서늘하니 저녁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 있었다. 시원한 바람까지 부니 오늘의 찜찜함을 날려버려야겠다며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갑자기 뒤쪽에서 '휙' 하니 사람이 나타나더니 진한 땀 냄새를 남기고 앞으로 쭉 나갔다. 쿠션 좋은 러닝화를 신었는지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은 채 구름 위를 날 듯 달리기를 한다. 갑작스레 놀라기도 했지만,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걸음을 멈추고 점차 사라지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뛰면서 에너지를 뿌리고 다니는 걸까? 그가 남긴 기운이 딱 맞는 열쇠처럼 마음에 꽂혀 막힌 문을 열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기! 오랜만에 이 단어를 떠올렸다. 나에게 달리기는 여전히 긴장감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100미터 달리기가 원인인 듯하다. 달리기에 최적화된 신체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면서 나는 꼭 3등 안에는 들고 싶었다. 1등은 공책 세 권, 2등은 두 권, 3등은 한 권을 부상으로 받았다. 장거리 달리기와 계주까지 합쳐서 순위 안에 들면 제법 두둑하게 공책이 쌓였다. 달리기가 좋았던 게 아니었다. 공책 두께는 자부심이었다. 그러니 매번 출발선에 서면 심장이 콩닥거렸다. 저 멀리 결승선을 바라보고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내 눈앞에 다른 누군가가 없을 때까지. 다리가 더 길면 좀 더 가뿐하게 뛸 수 있었을까? 그러면 달리기가 그렇게 힘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 체력장이라는 걸 하고, 군 복무 때 구보 행군이라는 걸 한 이후로 달리기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혹은 약속 시간에 늦어 뛰는 일 이외에 뛰어다닐 일도 그다지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몸 대신 마음이 달리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저 사람의 달리기라니.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일산 호수공원에서 해 질 무렵 노을을 등지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그림 같았다. 나는 그 그림을 멀리서 감상만 했지, 그 속으로 감히 뛰어들지는 못했다. 보기는 참 좋은데, 내가 하면 힘들 것 같다는 변명은 참으로 궁색했다. 그런데, 바람을 일으키며 바로 옆을 스친 저 사람의 달리기는 그림 감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 감상과 현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그가 뿌리고 간 에너지에 손이 닿았다. 우와…. 나는 감탄했고, 그 감탄에 다시 한번 놀랐다.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그 사람 흉내를 내보기 시작했다. 여기는 결승선도 없어. 이젠 공책도 필요 없어. 달리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어. 잘 뛴다고 자랑할 사람도 없어. 그리고 달리다 힘들면 다시 걸어도 돼. 가볍게 뛰는 동안 오늘 쌓인 먼지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에너지가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먼지부터 털어야 했다. 며칠 후면 새로 주문한 키보드가 올 것이다. 이번엔 정말 잘 모셔 볼 것이다. 조금 달리다 보니 그 사람이 멀리서 다시 나타났다. 반환점을 돌았나 보다. 다시 에너지를 뿌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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