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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의 핵심은 로고 리뉴얼이 아니라 일관성이다.

요즘 브랜드 / 2

요즘 브랜드 / 박찬용 / 92


최근에 어떤 프로젝트 제안서를 읽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새로 추진하는 사업의 브랜딩 전략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이런 맥락이었다. ~~~하여 브랜딩해나간다. 


읽다가 한참을 멈춰서 고민하게 된다. 대체 이 문장에서 '브랜딩'은 어떤 의미로 쓰인 걸까. 당시 내 눈 앞에 있던 제안서의 전후맥락을 모두 고려해서 보았을 땐, '브랜딩'이란 단어가 아니라 '홍보'라는 단어로 바꿔쓰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마케터가 있고 마케팅 전문가가 있고 브랜딩 전문가도 있고 나는 그 중에 널린 일개 마케터 1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모호하게 쓰이는 단어를 보면 짜증이 나서 미친듯이 책을 읽다보니 자연히 내 표현으로 정리되는 한 문장이 있었다. '브랜딩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같은 결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 내가 겪었던 것처럼 '홍보'라는 단어를 쓰면 딱 맞을 걸 '브랜딩'이라고 쓰면 그냥 모두가 골치아파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넘어간다. 자기 머리속에 개념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것은 그냥 넘어가게 돼 있는 것이 사람이다. 


'홍보'라는 단어만큼 '브랜딩'과 많이 혼용(?)되어 쓰이는 단어거 '로고'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새 로고, 그러니까 리뉴얼한 로고를 뜻한다. 이번에 이렇게 저렇게 해서 새로 브랜딩하자. 라고 할 때 이름갈고 로고 갈고 끝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이건 뭐랄까. 치약 껍질, 그러니까 치약 케이스와 같다. a라는 치약이 있는데 로고와 이름을 바꿔서 이미지를 어찌어찌해보겠다고 리뉴얼을 한다. 내용물은 그대로인데 이름은 b로 바꾸고 로고도 바꾼다. 아니 옛날에는 먹혔지. 지금은 누가 그런거에 속아?라고 하기에는 분명 효과가 있다. 그놈이 그놈인지 알아볼 생각도 관심도 에너지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분명먹힌다. 하지만 조금만 알아보면 금방 들통날 거짓말의 영역이다.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예는 정치권이다.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바뀐지 시간이 꽤 오래 흘렀는데 나는 아직도 종종 헷갈린다. 치약의 내용물이 그대로이면 껍데기를 바꿔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에 브랜드 리뉴얼의 효과가 없다.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브랜딩'의 단어 뜻 설정을 = 로고와 이름을 새로 만드는 것. 으로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케터라면? 그렇게 이름과 로고를 바꾸면서 최소한 어떻게 컨셉이 바뀌는지, 그래서 무엇을 소구해나갈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일관성있게 쌓아가고 인지시켜야 한다. 그걸 반복하는 것이 마케터의 일이다. 


끊임없이. 국방부 시계가 흐르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쓰이는 말이 다르고 소통의 방법이 달라지고 정보가 유통되는 채널이 달라지면 블로그 하다 인스타 하다 유튜브 하다 뭐 이렇게 되겠지만 그것은 치약을 어디다 유통시킬까의 문제이고, 치약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것이다. 


그쯤되면 마케터의 일이 경영적인 부분에까지 다다르게 되는 느낌이다. 이게 허용이 되는 회사는 그만한 능력의 마케터를 가지게 될 것이고, 허용되지 않는 회사는 '브랜드 리뉴얼' 한다고 하고 '로고 리뉴얼' 한 후 이전과 똑같은 치약을 양심의 가책을 가지며 알려야 하는 수준의 마케터만 보유하게 될 것이다. 


작은 눈덩이를 생각하면 된다. 확실한 '핵'이라면 그것을 계속 굴려나가면 된다. 멋진 눈사람도 만들 수 있고, 이글루도 만들 수 있다. 로고는 그렇게 만들어진 눈사람/이글루의 이름/명패 정도 되는 것이다. 껍질에 현혹되어 엉터리로 진행되는 '브랜딩'이 없어지길 바라며.  


덧)

이미 정말 훌륭한 '브랜드'라면, 껍질이 중요하지 않다. 멋들어진 로고와 이름이 아니어도 그렇다. <2019트렌드 노트>에는 이에 너무 훌륭한 예가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시드물'이다. 화장품 리뷰 앱 '화해'에서 '시'만 쳐도 젤 위에 나타난다는 브랜드 시드물의 홈페이지는 이렇다.


타임머신 타고 2000년대 초기로 돌아간 느낌


물론 더 멋들어지게 로고도 바꾸고 홈페이지도 가꾸고 하면 더 있어보일지 모르긴 하겠지만 그건 누차 말했듯이 치약 껍데기를 바꾸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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