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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필 Jan 28. 2019

의문의 보더

늦은 밤, 잔디에 앉아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오전 한 시, 그러니까 시곗바늘이 자정이 넘어 한 시를 가리킬 때였습니다. 에펠탑은 1시간마다 빛나는데, 딱 그때만 모든 불이 꺼진 상태에서 깜빡이기만 한다고 해서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2시쯤 됐을까요? 웬 젊은 외국인들이 와서 같이 놀자고 합디다. 저는 1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옆에 앉아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할 일도 없던 참이라 같이 얘기했습니다.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터라 온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아이가 제 보드를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빌려줬죠. 그리고 10분쯤 지났을까요? 공원 한쪽 구석에 구급차가 오더니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보드를 빌려 간 여자아이였습니다. 다리가 부러졌더군요. 피도 꽤 났고요. 당황했지만 가까이 가서 물었습니다. 괜찮냐고. 그랬더니 그 아이가 그러더군요. 

네 보드 짱이야. 엄청 잘나가. 


그리곤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타더군요. 그녀는 문이 닫히는 마지막까지 저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원인을 제공하고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반짝거리는 1시의 에펠도 기분 좋게 볼 수 있었고요.


가끔은 그 친구 생각이 납니다. 다리가 부러져 놓고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보드 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다니. 배려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인생이 즐거운 사람이었을까요? 어느 쪽이건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날 하루를 망치지 않은 건, 그 친구의 미소와 엄지 때문이었으니까요. 아 참, 사과도 해야겠죠. 엄청 잘 나가는 보드를 들고 다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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