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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필 Jan 24. 2019

힘들더라도 나중에는

밀라노는 날씨가 좋았다. 볕이 강했지만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고 하늘이 참 예뻤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위안 삼을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여행이 두 달이나 남은 탓에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외진 곳에 숙소를 구했다. 때문에 40분을 걸어야 했다. 캐리어 바퀴는 깨졌고 심지어 짐도 많았다. 외진 곳이라 구글 지도도 먹통이었다. 결국 나는 40분 거리를 두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식한 행동이지만, 그땐 그래야만 했다.


밀라노의 화창한 날씨에 온몸에 땀이 범벅이라 꼭 물에 젖은 종이 쪼가리 같았다. 게다가 음식물을 도둑맞아 전날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체크인을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주인이 나를 부르더니 배가 고픈지 물었다. 나는 ‘Yes’라고 간절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주인이 씩 웃으면서 “여행은 배고픈 거야”라고 했다. 그리곤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엔 라자냐와 고기완자 조림, 샐러드가 있었다. 주인은 가족들이 먹고 남긴 음식인데 너무 많이 남았다며 먹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왔지만, 감사하다는 염치없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너무 허겁지겁 먹어서, 사진도 먹다가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음식을 다 먹었을 때쯤 주인이 왔다. 그걸 다 먹었냐며 좋아했다. 그리곤 자기가 설거지를 할 테니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나는 설거지는 내가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주인은 끝까지 자기가 하겠다며 기어코 수세미를 잡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으로 갔다.


며칠 후 체크아웃을 할 때였다. 외진 곳이라 손님이 많지 않아 주인은 사람이 떠날 때마다 배웅을 나가곤 했다. 나 역시 주인이 배웅을 나왔다. 나는 마지막 인사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했다. 주인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힘들더라도 나중에 아름답게 기억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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