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굽는 일은 고되다. 손에 기름이 튀는 와중에 불의 세기가 적당한지, 고기가 타고 있지는 않은지 봐야 하기 때문. 게다가 고기가 끊기면 안 된다거나, 고기는 한 번만 뒤집어야 한다는 신념은 꽤 묵직해서 중간에 소주 한잔 받는 것도 타이밍을 노려야 한다. 그래서 고기를 굽겠다는 사람의 대사는 늘 비슷하다. ‘내가 고기 하나는 잘 구워’
한편, 남이 고기를 구워주는 것을 기다리는 데에는 미안함을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가령 쌈 하나를 싸서 입에 넣어준다던가 고기가 익을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불판 앞에서의 신뢰는 그렇게 생긴다.
어제는 친구가 고기를 굽겠다고 했다. 초벌이 되어 나오는 집이라 부담은 덜했으나, 누군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 호사스러운 일이 어색했다. 허나 나보다 고집이 센 친구라 집게를 빼앗을 수는 없었을뿐더러, 집게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해서 계산이나 할 요량으로 타는 고기를 가장자리로 빼거나 이따금씩 갈빗대에 붙은 고기를 잘랐다. 눈치껏 친구의 잔도 채워줬다.
다 먹었을 때쯤 친구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나 역시 다녀오려던 참이라 그러자고 했다. 친구는 주인 할머니께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물으러 갔다. 그리고는 계산까지 마쳤다. 평소라면 고맙게 얻어먹겠지만, 그간 자주 끼니를 얻어먹은 탓에 오늘은 내가 사려던 참이었다. 고기 굽는 일을 양보한 일이 어쩐지 아렸다. 그래서 얻어먹고도 서운한 소리를 했다.
불판 앞에서의 신뢰는 늘 계산대 앞에서 깨진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일임에도 여지가 없다. 어떻게 하면 불판 앞에서의 신뢰를 가게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을까? 우선은 고기를 잘 구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