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로미의 김정훈 Mar 22. 2024

김이나를 좋아하세요

<보통의 언어들>; 유난스럽다

여러분의 재능은 무엇인가요? 저는 원래 아무런 재능도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재능을 알아봐 주고 열심히 가꾸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과거의 저처럼 재능을 찾고 있는 분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써봤습니다. 





유난스럽다: 그건 당신이 특별하다는 뜻


주로 비난의 용도로 쓰이는 이 말은 국어사전에 실린 원 뜻으로는 아주 근사한 말이다.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다'. 이 얼마나 극찬인가! - <보통의 언어들> 中




어릴 때부터 저 스스로 '유난스럽다' 싶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담임 선생님이 혼을 낼 때마다 울곤 했습니다. 제가 혼이 났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혼날 때면 생뚱맞게 제가 울곤 했습니다. 저도 제가 왜 우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슬펐고 눈물이 났습니다. 말 그대로 유난이었죠. 친구들은 그런 저를 보면서 '네가 왜 울어?'라며 묻곤 했고, 저 역시도 왜 이러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런 제가 싫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감정을 억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슬프거나 무섭거나 하는 등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저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오히려 초연한 척 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저 역시 감정을 누르고 숨기는 법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가 말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21살이 된 저는 재능을 찾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곧잘 좋아하는 게 있고, 장점과 특징이 있는데 저만 아무런 특징도, 강점도 없어 보였습니다. 평범해도 이렇게 평범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세상에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그 유일한 예외입니다.' 하곤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사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재능을 제 발로 억누른 사람이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특별함을 지키자


저는 엠페스입니다. 엠페스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엠페스란 '타인의 생각과 감정, 에너지를 잘 느끼고 흡수하는 매우 민감한 사람'입니다. 엠페스는 다른 사람의 감정만으로 내 감정이 달라지고, 쉽게 정신적으로 피곤해합니다. 



설명만 듣고는 아직 잘 모르시겠나요? 예를 들어, 친구 8명과 재밌게 밥을 먹고 놀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저는 단 한 명이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는 것을 순간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아직 다른 친구들은 모르고 있는데 말이죠. 저는 감정을 잘 느끼고 흡수합니다. 친구가 기분이 좋아지기 전까지 저는 항상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고 저까지 기분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니, 그 친구가 기분 나쁜 것보다 더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친구의 눈치를 보고 자꾸만 친구의 기분을 살피며 광대가 됩니다. 



예전에 저는 모든 사람들이 저와 같은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런 특징을 가진 엠페스는 자신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내어줍니다. 그러다 쉽게 지쳐버리곤 합니다. 



저는 언제나 거절을 잘 못하고 남들이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진짜 내가 아닌 '친구들이 생각하는 나'로 살려고 열심히 연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오바 요조처럼 말이죠.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中


저는 제가 기분이 나쁘면 친구들도 기분이 안 좋아질까 봐 행복한 척 웃는 얼굴을 하며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를 해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날 좋아하지 않을까 봐 애를 써서 나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지쳐서 거절을 하려고 하거나 싫은 티를 내면 친구들은 종종 저에게 실망하거나 전에는 해줬는데 갑자기 왜 그러냐고 말했죠. 처음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태도에 분노하지만, 곧 그들의 기대를 내가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더 열심히 나를 내어주는 그런 악순환에 빠집니다. 



엠페스들은 다른 이들의 감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성향이 있는 탓에, 남들과 맞서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 나아가 남에게 맞춰주려고 하는 성격을 키우게 된다. 맞서는 것 역시 감각의 과부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과 갈등을 피하려는 태도는 다른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 판단당할 게 두려워 자신의 욕구를 무시한다든지, 불만을 속으로 계속 쌓아둔다든지, 다른 이들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든지, 진정한 자기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막는다든지 하는 것이 그런 문제들이다. 그렇게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 <두려움 없이, 당시 자신이 되세요>, 아니타 무르자니 中


그러다 군대에 가자마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정말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남의 눈치를 보며 휘둘려 살아왔는가. 얼마나 내 인생을 남에게 내어주었는가. 남들의 요구를 살아주느라 얼마나 '나'는 고통받아왔는가. 나는 얼마나 나의 요구는 돌보지 않고 살아왔는가. 이제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어. 나는 이제 '내 인생'을 살 거야. 



물론 저는 그 뒤로도 종종 남들의 요구를 살아주며 저를 내어주곤 했지만, 책을 읽고 저 자신을 더 이해하면서 엠페스를 재능으로 활용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제가 엠페스라고 소개하고 그 특징을 이야기해 주면 믿지 않습니다. '네가 엠페스라고? 말도 안 돼!'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제가 더 이상 나를 내어주면서까지 남에게 맞춰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무안한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유난스러움을 지켜준 나에게 새삼 고맙다. 보통 유난스러운 게 아닌 덕이었는지, 수치심에 취약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꺾이질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나의 성향이 결국, 작사가가 되는 데 큰 몫을 했을 테니 말이다. 생각건대,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 줄 무언가일 것이다.


그러니 유난스러운 자들이여,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특별함을 지키자. -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우리는 더 이상 내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남들이 유난스럽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내 재능을 억누르려고 해선 안 됩니다.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특별함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은 '본연의 나'와 가장 깊게 연결되어 있고, 본연의 나는 '느낌', 즉 감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곧 내 재능을 억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난 부족한 사람이야. 그러니 나의 이런 부분은 없애버려야 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 아니타 무르자니 



여러분의 '유난스러움'은 무엇인가요? 혹시 과거의 저처럼 '나는 아무런 재능이 없어'라고 생각하고 계시진 않나요?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내가 살면서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게 뭐가 있지?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억눌러왔던 생각이나 감정은 뭐가 있지?' 그 안에 여러분만이 가진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이전 06화 스콧 애덤스를 좋아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