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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Apr 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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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ROR>, 이찬혁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알고 있는 대로 처신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 사마천, 《사기열전》


여러분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요? 저는 한때 '당장 내일 죽어도 "헌신"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가치관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별꼴이었죠. 



그렇게 자만심이 가득 찰 때쯤 산책을 하는데 제가 전혀 가치관에 맞게 살고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나는 과연 헌신하며 살고 있나?' 이상과 현실 간에 간극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 성공이 먼저 고픈 건 아닐까? 아니지. 그렇게 먼 길을 돌 필요가 없어. 그건 진짜 내가 아니야. 내 진정한 가치관은 뭘까. 나는 남들한텐 헌신하며 살고 있다며 소리쳤는데, 지금 이게 뭐지? 성공에 매몰되어 있잖아 지금. 나는 삶을 책으로 배운 멍청이구나. 나의 것이 하나도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그런 고민을 할 때쯤 이런 앨범이 나왔습니다. 이찬혁의 <ERROR>입니다. 


출처: YG엔터테인먼트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면 후회가 없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데서 시작됐다. 여태껏 악뮤로 활동하면서 즐거웠고, 옳다고 생각하는 걸 말해왔는데 그 생각들에 오류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전 악뮤 앨범에서 자유와 사람에 대해 많은 말들을 했는데 내가 당장 죽게 된다면 난 여전히 그걸 최대 가치로 생각할 것인가 고민해 보니 모순이 있더라. 

- 이찬혁 


어떠신가요? 내가 당장 죽게 된다면 매일 말하고 다니는 바로 그 가치, 여전히 그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그리고 하나 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신가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도 딱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 죽으면 내가 과연 헌신하며 살았노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부끄러운 순간이었죠. 



지금 그에게도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합니다. 첫 번째, '내가 당장 죽게 된다고 해도 이걸 최대 가치로 생각할 것인가?' 두 번째,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떳떳한가?' 그는 '벤치'라는 노래를 작업하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악뮤의 앨범 '넥스트 에피소드'의 수록곡 벤치였다. 당시 그 곡에서 '나는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이 다 없어지고 벤치에서 자고 일어나도 행복할 자신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최고 가치는 사랑이고 자유니까'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여전히 그게 제 인생의 최고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갔는데 제가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모두가 나를 비난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없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그 노래가 실제 그런 삶을 살 수도 있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그 노래에서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벤치'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분명 그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도 나는 사랑과 자유에 따라 살고 있으니 문제없다'라고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명상해 보니 그는 자유와 사랑을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내가 과연 사랑과 자유에 따라 살고 있는가에 대한 떳떳하지 못함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자유로이 사랑하며 사는 분들에게 부끄럽고 죄송스런 감정이 든 거죠. 


이 인터뷰를 읽고 노래를 들으며 이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요. 사랑은 '사랑한다'는 말로 남을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할 때 실현된다는 말입니다. 삶의 의미 역시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명사로 남을 때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살아갈 때 자연스레 성취되듯이 말입니다. 




모두가 그렇듯이, 죽음 앞에서 우리는 솔직해집니다. 이찬혁도 그랬습니다. 그는 죽음을 명상하며 노래를 썼고, 그 역시도 결국 죽음 앞에서 가짜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정말로 중요한 걸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도 모르게 

꿈꿔왔네 거대한 성을

나조차 스스로도 모르게 

남몰래 견고하게 

쌓아 올렸네 꿈의 성을 

차근차근 한 단계 한 단계 

늘 겸손 하라 했지만 

난 왕이 되고팠던 거야 

욕심이 없다 했지만

난 정복을 원했던 거야 


- <내 꿈의 성>, 이찬혁 中


그를 옭아매던 족쇄를 벗어던지고 솔직해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자유와 사랑을 버린 건가요? 아닙니다. 하지만 억누르던 가치를 풀어줬을 뿐입니다.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가치죠.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정말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 때문입니다.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 연설 中


'옳지, 옳지, 착하지.'

그것을 난 벗어야 했네.

날 강하게 가둔 액자에서.


그저 그런 사람에겐

관심이 점점 떨어지고

함께 갈 사람만 보이네.


<내 꿈의 성>, 이찬혁 中




그 역시 죽는 순간이 다가오자 사랑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전에 글을 쓰며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곧 죽게 되어, 마지막으로 전화 한 통화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왜 당신은 망설이고 있는가? - 스티븐 레바인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그 누구도 사랑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사랑을 더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다 말하고 죽으려 한다.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

-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라>, 보로미의 김정훈 中



니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걸

(...)

잘 가, 잘 있어

행복했었어

고마웠어

뭐가? 

사랑. 


- <마지막 인사>, 이찬혁 中


그 역시 마지막 순간에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을 전하고 싶어 하네요. 우리 참, 미련한 동물입니다. 



'가치', '자유', '사랑', '혁신', '헌신' 이렇게 말하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뭐 대단한 게 아닙니다. 유튜버 김짠부님은 어느 한 대표님의 말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한 대표님이 말했다. 

진짜 혁신은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택시 기사님이 어제보다 오늘 친절해지는 것이라고."


위로가 됐습니다. 그래, 정말 나를 다 버리고 남을 생각하는 대단한 것만이 헌신이 아니다. 그냥 어제보다 더 남들을 생각하고, 내가 가진 걸 하나라도 준다면야, 그것 역시 헌신이지 않을까.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그것이 헌신아닐까. 


여러분의 최고 가치는 무엇인가요?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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