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목적을 모를수록 속도에 집착한다

by 보로미의 김정훈

'신 포도'인가 아니면 '역 신 포도'인가


옛날 옛적에 한 여우가 살고 있었다. 여우는 길을 걷고 있었는데 배가 무지 고팠다. 운 좋게도 여우는 곧 포도나무를 발견한다. 여우는 배고픔을 해결해줄 포도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포도는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었다. 여우의 키로는 절대 포도를 따 먹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없었다. 나무가 너무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여우는 포도를 포기한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저 포도는 분명 신 포도일거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다. 신 포도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진다. 사람은 종종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신 포도’라고 말하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래야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내가 사지 못하는 물건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부각하며 신 포도라고 치부한다. 살아보지 못한 으리으리한 집을 보면서 저 집은 보일러 값이 많이 나오겠다며 집을 한순간에 신 포도로 만들어버린다. 도저히 내 능력으로 닿지 못할 거 같은 재력이나 커리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평생 돈 생각만 하며 사느라 피곤할 거야’라고 말하거나 ‘저 사람은 쉴 시간도 없을걸? 차라리 워라밸을 갖춘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라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다.


하지만 다른 부류의 신 포도가 있다. 바로 ‘역 신 포도 이론’이다. ‘역 신 포도 이론’은 가지지 못한 사람을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창조되었다. 예를 들어서 기업은 ‘이걸 안 쓰는 사람은 지성인이 아니거나 부자가 아니다’라고 교묘하게 마케팅한다. 또는 일확천금을 번 사람이 주위에 기회를 놓친 사람에게 ‘그러게 내가 사라고 할 때 사지 그랬어’라고 말하며 괜히 조롱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예시로, 꿈을 포기한 자가 꿈을 좇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은 간직하고 있을 때나 아름다운 법이야”라고 말하는 경우도 ‘역 신 포도’에 속한다.


‘역 신 포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사회의 보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회는 바람직한 인력을 생산하기 위해 청소년기부터 그에 맞추어 교육한다. 그들은 ‘나’라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다. ‘훌륭한 일꾼 1’이 필요하다.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는 산업화 시대의 인력 창출이며, 다른 말로 그들은 군말하지 않는 톱니바퀴가 필요하다. 주는 일을 열심히 처리하는 꼭두각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톱니바퀴가 되어달라고 요청한다고 해서 무작정 수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같은 젊은이들을 구슬릴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안정’이다. 인간은 불안한 상태를 참지 못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인 보상을 미끼로 우리를 회유하고 조종한다. ‘우리 기업에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속삭인다. 우리는 안정을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미끼를 덥석 물어 버린다. 열심히 일하면 안정을 선물해주겠다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한때는 나의 꿈을 찾고 내 꿈을 이뤄가기로 한 20대는 역경을 마주한다. 처음엔 모든 게 설레고 반짝여 보였지만 점점 만만하지 않은 현실을 깨닫는다. 자유도 무겁고 불안한 와중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으니 일단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꿈이 생기거나 꿈을 이룰만한 조건이 갖춰지면 그때 다시 꿈을 찾아 떠나겠다고. 아주 합리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은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아를 포기하면서 내뱉는 말인 경우가 많다. 점점 나의 자아를 포기하고 살아온 인생에 익숙해지자 굳이 꿈을 좇거나 다른 인생을 살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한때는 살아보고 싶었던 인생보다 다른 사람들이 지금의 날 어떻게 봐주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지금 인생도 충분히 아름답고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나쁜 거라고 치부한다. 끝끝내 마지막에 다다르면 자신의 꿈을 향해 ‘신포도’라고 외친다. ‘꿈? 그거 다 젊은 애들이 하는 철부지 없는 말들일 뿐이야.’


다시 역 신포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방금 말한 부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고통받기 싫어서 회피한다. 한편으로 지금 하는 일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곳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들은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본능이 떠오른다.


또 다른 부류도 있다. 사회가 주는 보상들이 자신을 온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성공이라고 믿는 경우다. 이들은 나를 온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고 믿는다. 사회가 제시하는 명성, 지위, 행복, 안정 등이 나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리라 믿고 사회가 제시하는 보상을 그 누구보다 절절히 노리는 사람 역시 있다.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불필요한 사치라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이 하나의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길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들은 공격하고 싶은 본능이 떠오른다.


두 부류 모두 반격을 준비하지만 단순 무식한 공격은 멋지지 않기 때문에 위트있는 공격의 수단을 찾는다.그리고 그 반격은 바로 ‘역 신 포도’다. ‘역 신 포도 이론’ 중 인상 깊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대기업을 까는 사람은 대기업을 다녀 보지 않은 사람이다.’


사회에 퍼져 있는 대기업의 이미지란 무엇인가? 다양한 복지와 혜택, 훌륭한 인재 그리고 빵빵한 연봉과 심리적 보상 등이 있다.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게 대기업인데 이를까는 사람은 이 보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가 내뱉는 신 포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대기업은 각박해. 사람 냄새가 안 날거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워라밸같은 건 기대할 수도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기업에 다니는 일부 인원이 역으로 신 포도를 던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기업을 까는 사람은 대기업을 다녀 보지 않은 사람이다.’는 말은 어쩌면 일부 자아를 잃은 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찾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자아 포기로 가는 길에 관한 회유책일지도 모른다. .


그 근거를 다시 두 부류로 돌아가 찾아보자. 먼저 두 번째 부류는 자신의 대답이 오답으로 끝나는 일을 끔찍이 싫어한다. 완벽한 내 인생에 오점이 생기는 일은 절대 생겨서는 안 되며, 내 인생은 모두가 인정할만한 완전한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여나 대기업을 까는 사람의 일부가 완벽한 논리를 가져와 나의 인생을 부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카리스마 있게 ‘역 신 포도’를 던진다.


그리고 첫 번째 부류는 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삶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지만 경제적 보상만으로 꾸역꾸역 견뎌 내고 있는 자들이다. 워라밸을 중시한다고 말하지만 인생의 행복을 일이 아닌 퇴근 후의 삶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삶에 대한 주체성과 자발성을 잃은 지 오래되었지만 성공이나 자아의 실현을 아직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있기 때문에 꿈을 좇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을 질투해서 괜히 신 포도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즉, 역 신포도처럼 보이는 이 말이 사실은 신포도스러운 말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 부류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아직 자아를 던져두지 않은 ‘변절자’들을 눈 뜨고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기로 신 포도를 던진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지만 그 공허함에 직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이 더 비참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한 가면을 만들었다.




속도에 집착하는 본성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을 모를수록 속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하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일과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공허함이 찾아오는데 그것을 잊으려고 더 열심히 사는 것에만 집착한다.


동기부여에 중독된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과 사회인들의 모습은 이런 점에서 시사점을 던진다. 동기부여는 언제나 열심히 달리라고 요구한다. 속도를 내고 효율적으로 살라고 요청한다. 세상에 분노하고 스스로의 의지력을 질타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혁하라고 말한다. 이들은 속도와 의지에 집착하는 동기부여에 열광한다.


속도에 집착하는 현상은 내용물이 텅 비었을 때 가속화된다. 학생들이 급하게 졸업하고 나서 사회로 나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 실존적인 고민이 종종 찾아온다. 이 고민은 특히 혼자 있거나 바쁘지 않은 시기에 찾아온다. 그리고 고민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더 바쁘게 일하려 한다. 생각이 많을 때는 더 바쁘게 사는 게 답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목적을 모를수록 속도에 더 집착한다. 우리는 불안과 고독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항상 피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이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생과 비교하면 30대를 마주한 성인은 책임감과 함께 자신의 고독을 마주할 용기가 있을 때, 즉 공허함과 정면으로 악수할 준비가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수월하다. 살면서 쌓아온 경험과 성찰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그리고 살아오면서 어떤 일을 했을 때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되돌아볼 데이터가 많다. 물론 그만큼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졌을 수도 있기에 변화하기는 훨씬 더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이미 사회생활을 오래 해온 직장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직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답해야 하는지는 미지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도 충분히 대답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커리어적인 질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형성하는 다른 분야에서도 공허한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대답은 다양하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아직 커리어 자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초년생들의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커리어적인 색깔을 진하게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항상 ‘꿈을 좇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당장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아버린다거나 자퇴를 하거나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가 되는 듯한 그림을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정말로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절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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