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화와 인생>

26살의 안식년

by 보로미의 김정훈

이번에는 나처럼 안식년을 가지고 싶은 20대를 위해 자그마한 가이드라인을 주고자 한다.

여기 모든 가이드라인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으로 유명한 조지프 캠벨에게 배웠음을 알린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개념은 바로 '방랑'이다.



"여러분도 방랑을 하게 되면, 당장 '그날 하루'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하되, '내일은 뭘 해야지' 하고 미리 생각해 둔 것에 매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아무런 책임질 일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여러분은 다음 두 가지를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굶는 것이며,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 조지프 캠벨



나는 안식년을 보내면서 방랑과 방황을 구분하게 되었다. 방황은 그저 불안에 떨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거나, 이것저것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지만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금방 접는 것을 말한다. 반면, 방랑은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떨 때 행복한지에 귀를 기울이며 나아가되 구체적인 목적지는 없는 것을 말한다.



방황은 부정적인 시간이다.

방랑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방랑은 '살아있음' 또는 '행복'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다니는 여행이다.

방황은 나침반 없이 떠도는 고행이다.



그러므로 나는 방랑자가 되어야 했다. 내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귀 기울이고, 그걸로 하루를 채워나가야 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안식년을 보내는 방랑자는 새로운 일을 생각하기보다 오늘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한다.



조지프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산스끄리뜨어에는 존재, 의식, 그리고 희열을 의미하는 사뜨sat, 찌뜨cit, 아난다ānanda라는 용어가 있다. 이 세 가지 개념은 저 멀리 깊은 곳에 있는 초월성의 언저리를 가리킨다. 초월성을 말할 때는 그것을 웅덩이라고 부르든, 전체라고 부르든,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초월성은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초월성의 이쪽, 세속에 있는 것뿐이다. 초월성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말과 이미지를 통과해야 하는데, 존재, 의식, 희열이라는 세 가지 개념은 우리를 초월성이라는 공空에 가장 가깝게 데려간다.



나는 아직도 존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의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희열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의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이미 초월성의 언저리에 있는 것이다. 무일푼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희열을 따라가세요. 뭔가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느낌을 따라가는 것이 내년에 돈이 어디서 나올지 찾아다니는 것보다 더 확실한 선택입니다.”

<블리스로 가는 길>, 조지프 캠벨



나의 안식년은 희열을 따라가는 한 해가 되었어야 했다. 나는 언제 행복한지 알고 있었다.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글을 쓸 때. 그러나 나는 나의 행복을 의심했다. 이유는 하나, 이게 당장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큰 실수였다.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안식년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지나치게 많이 걱정했다. 안식년을 보내는 방랑자답지 못한 태도였다. 남들의 생각을 걱정하다보니 '희열'이 도저히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까?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럼 정말 '무엇'을 찾아야만 행복할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엇을 찾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건 또다시 올바른 선택에 집중하는 함정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는 일이다.



삶에서 단 5초라도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그 행복의 느낌을 잊지 말고 따라가 본다. 오늘 하루 단 5초만 행복했더라도, 점점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알게 되면 5초는 5분이 되고, 50분이 된다.



나는 내가 읽은 책과 구절을 남들에게 알려줄 때 행복하다. 또, 나는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찾을 때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하늘을 볼 때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1시간 정도 행복하고 싶다면, 1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된다는 사실을 안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서점에 가서 책을 1시간 찾으면 된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을 1시간 동안 쳐다보면 된다.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런 느낌이 없을 경우, 여러분은 그저 삶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살아가는 셈이다."

- 조지프 캠벨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느냐고? 전혀 그렇지 않아. 그니까 그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럼 나는 청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원래 청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에선 조금 쉴만하면 청소를 시켰다. 나는 속으로 불만을 터트리며 꾸역꾸역 청소를 했다. '얼른 책 읽어야 하는데.', '빨리 px'가야 하는데.', '좀 쉬고 싶은데 왜 날 자꾸 못살게 구는 거야.'



내가 그때 읽고 있던 책이 바로 <마음챙김>이었다. 거기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심리학자 매튜 킬링스워드와 대니얼 길버트의 유명한 연구에서, 정신이 방황할 때 우리가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혀졌다. (...) 연구 결과, 행복은 우리가 하는 일보단 그 일에 충실히 참여하는지 여부에 더 달려 있음이 드러났다. 가령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을 집중한다면, 설사 설거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정신이 미래나 과거에 팔려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

- <마음챙김>, 샤우나 샤피로 中



우린 이걸 '몰입'이라고 부른다. 나는 청소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마치 내가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처럼, 이 건물에 있는 모든 먼지를 닦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청소했다. 청소에 몰입했다. 그리고 연구 결과를 증명하듯, 나는 행복했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

- 조지프 캠벨



안식년은 반드시 놀이가 되어야 한다. 1년짜리 긴 여행이 되어야 한다. 만약 안식년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면, 분명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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