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의 안식년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있는 능력의 부재에서 나온다.”
- 블레즈 파스칼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압도감에 짓눌릴 때가 있다. 나는 최근에 그럴 때마다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필살기가 하나 발명했다. 그건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다.
먼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도인들의 정신적 지침서이자 '신의 노래'라는 뜻을 가진 <바가바드기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행위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인간이 한순간도 행위를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바가바드기타>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뭘까? 우리는 보통 게으른 사람에게 '넌 왜 아무것도 안 하니'라고 말한다. 나 스스로도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사실 행동을 하고 있다. '게으름'이라는 '부지런함'의 반대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위를 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스무 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난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까? 내일부터 뭘 해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 바쁘게 무언가 하고 있었다. 불안감과 공허함을 열심히 수행했고, 눈 뜨고 잘 때까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매일 밤 라면을 먹고 있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사실 게으르느라 바빴다.
그럼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곧장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파울로 코엘료가 아름답게 표현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시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귀 기울여야 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
사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즉,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어야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삶에서 도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삶에서 도피하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바쁘게 살면 된다. 또는 생각과 감정에 파묻혀 살면 된다.
충동적으로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나는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있는 '지금 여기'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 에크하르트 톨레
나 역시 내가 유튜브에 빠져 살고,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고, 그러면서도 약속과 술에 빠져 살았던 이유는 하나,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공허함과 불안감을 마주하기 싫었다. 내 감정을 마주하기가, 내 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당장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런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노풋'이다.
“우리는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저 욕망을 하죠.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는 재료가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욕망의 구성 재료들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우리는 덜 불행해집니다. (…) 그런데 이 욕망은 사유의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어요. 사유라는 게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끄고, 접속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겁니다. 인풋도 아니고, 아웃풋도 아니고 노풋 상태로 있는 거죠. 이런 노풋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너 노풋하면 지는 거야, 뒤처지는 거야 하면서 아우성이죠.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지식은 밖에서 들어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우러나온다고요. 사유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우러나오는 것들을 못 건져냅니다. 그냥 잠깐이라도 가만히 앉아 있어 보세요. 복잡한 생각들이 한결 정리가 돼요. 사유하는 거죠. 사유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中
사람들은 왜 노풋하면 지는 거라고 말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게으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란 없다. 노풋은 하나의 생산적인 시간이다. 사유하는 시간이자, 방랑하는 시간이자, 살아있음의 시간이자, 고요함의 시간이다.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심심함을 즐기기 시작하면, 무작정 원하는 걸 좇는 삶에서 잠시 일시정지를 하고 나를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지혜가 우러나온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지혜는 생각이나 말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다시 한번 오해를 풀자면, 나태하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게으르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게으름과 나태함도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우리는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선택해야 한다. 나는 어떤 행위를 선택할 것인가?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겠다는 결정은 내면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자의 특권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 빅터 프랭클
자, 우리에겐 자유가 있다. 나의 성장과 행복은 모두 나의 책임이다.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도저히 모르겠다면,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