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의 안식년
안식년을 보내면서 두 가지 고민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아침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름이 되기 전, 나는 여름보다 뜨거운 한 해를 보내리라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허함이 찾아오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매일 책만 좀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분명 연초만 해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것저것 다 해도 아직 오후 3시네?' 하던 내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막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유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뭘 해야 할지 다시 확실해지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답만 할 수 있으면 그날로 이 잉여로운 삶도 끝이야.'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나에게 쉽게 답이 찾아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그' 병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올바른 선택을 하려는 병. 나는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성공하는 법, 잘 사는 법 등, '어떻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지식 추구는 실천을 미루기 위해 더욱 알려고 발버둥 치는 도피적 태도일 수도 있다.”
- <굿바이 카뮈>, 이윤 中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질문 중에 이런 게 있다.
'만약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되면, 그때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바로 그걸 시작하세요!'
'만약 당신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바로 그걸 시작하세요!'
당장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는 '아무래도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을까? 그림도 배워보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허함에 찌든 나는 "만약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면 아무것도 안 할 거 같은데." 하고 생각했다. 미래가 안 보이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답이 없을 것만 같을 때 나를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내가 과거에 썼던 글이었다. 내가 쓴 글이 종종 내 뇌리에 스치곤 했다.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 한다고. 글은 아무래도 그런 도움을 준다.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내가 쓴 글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다. 어떤 답을 발견할 걸까? 아니었다. 나를 구원해 준 것은 대단한 아이디어나 답이 아니라 그저 질문이 사라지는 경험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사라지는 경험.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사라지는 경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경험.
니체는 인간의 정신을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로 나누었다. 그중 마지막 단계인 어린아이는 순진함 그 자체다. 어린아이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이를 쉽고 아름답게 표현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는 다만 사랑할 뿐이다."
- osho
그렇다.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다만 살아있을 뿐이다. 우리는 자꾸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하고 묻는다. 멍청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오쇼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는 그냥 사랑할 뿐이다. 그 일이 일어날 뿐이다. 일어나는 것이지 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해 보자. 그리고 행복했을 때를 기억해 보자. 무언가가 '일어나는' 경험이다. 물론 일어나기 전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행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에 몸을 맡긴다. 그때 우리는 사랑의 도구일 뿐이다.
"마음속으로 이처럼 흥분되고 뭔가 커다란 모험이 펼쳐지기 직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일이 펼쳐지게 하려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애써야’ 한다는 느낌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난 그저 내 자신이면 되었다. 두려움 없이! 그것은 곧 내가 사랑의 도구가 되게끔 나를 허락하는 것이었다."
다시 일기를 펼쳐 맨 앞 페이지에 있는 아니타 무르자니의 글을 읽고, 모든 질문을 잊기로 했다. 그래, 나는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삶에 빠져들고 싶지 않을 때만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했듯, 생각에 빠지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태도에 불과하다.
나는 왜 아침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은 이런 쓰레기 같은 질문에 대답하려 하지 마라. 질문을 중단하고 삶을 살기로 결정하라. 그리고 훗날 당신의 그 선택이 최고이자 최선이었음을 말하기 위해 헌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