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린 왕자> 그리고 <그릿>

26살의 안식년

by 보로미의 김정훈

네가 장미에게 쏟은 시간이 너의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거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을 영원히 책임져야 해. 너는 너의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 <어린 왕자> 中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 길동 씨는 연애를 하고 싶은데, 누구와 연애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뇌하고 있다. 옆에 있는 친구는 여러 사람을 소개해준다. 그러더니 길동 씨가 말한다. "나랑 별로 안 맞을 거 같아." 친구는 의아해한다.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아무래도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길동 씨가 이번에는 외모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소개받아 만나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30일 정도 만나보니 영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이렇게 타이른다. '그래도 조금만 더 만나봐. 30일이면 아직 그 사람이 어떤지도 모를 텐데 말이야.' 길동 씨는, "아니야, 진짜 안 맞는다는 확신이 들어."라며 포기한다. 길동 씨는 10년이 넘도록 이런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이 사람, 흥부씨는 대학생이다. 한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었다. 과제의 난이도는 상당했다. 한 달을 꼬박 노력해야 간신히 완성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학생들은 모두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학생 흥부도 마찬가지였다. 흥부는 과제를 위해 필요한 책을 빌리는 데서 시작했다. 논문도 찾아보았다.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리고 2주가 넘도록 과제 초안을 작성하는 데 집중했다. 과제를 수정하는 데 일주일이 더 걸렸다.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흥부가 과제를 제출할 때는 이미 과제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과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흥부는 과제에 열정과 에너지,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 사이에 흥부와 과제 사이에는 어떤 관계성이 형성되었다. 끝내 흥부는 결과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처럼 나는 우리가 공허하고 우울하고 외로운 이유는 어느 정도 관계성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정말로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게 아니라, 무언가와 적당한 관계성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유 역시, 아직 내가 무언가에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내가 선택했어야 할 '천직'을 한참 전에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선택에서 멈췄다. 그것이 진정 '천직'이 될 때까지 나아갔어야 했다.



어떤 사람이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발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고 해보자. 만약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이 찾아와 '너는 이것을 하면 된단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그 사람은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게 올바른 지 어떻게 알아?'



천직을 '찾는다'는 의미는 계속해서 탐색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무언가에 정착해서 전념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찾는다는 말보다는 만든다는 말이 더 의미에 가깝다. <그릿>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다가 어느 순간 분명해질 거라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면담한 그릿의 전형 대부분이 여러 관심사를 탐색하며 수년을 보냈고, 처음에는 평생의 운명이 될 줄 몰랐던 일이 결국 깨어 있는 매 순간과 종종 잠들었을 때까지 차지하는 일이 됐다고 했다.



관심사는 자기 성찰을 통해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계기가 되어 흥미가 생긴다. 관심사의 발견 과정은 혼란과 우연성이 존재하는 비능률적인 과정일 수 있다. 당신의 관심을 사로잡을 일과 그러지 못할 일을 확실히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의지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게 만들 수도 없다. 제프 베조스가 관찰한 바처럼 “사람들이 저지르는 큰 실수 중의 하나는 스스로에게 흥미를 강요하는 행동이다.” 직접 시험해보지 않고는 당신이 계속 관심을 갖게 될 일과 관심이 사라질 일을 파악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처음에 관심사를 발견했을 때는 종종 본인도 모르고 넘어간다. 즉 이제 막 무언가에 관심이 생길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지루한 감정은 느끼는 즉시 알지만 새로운 활동과 경험을 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성찰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 뒤 이제 열정의 대상을 찾았는지 며칠에 한 번씩 초조하게 자문하는 것은 너무 조급한 행동이다.



안식년을 지내기로 하면 끝없는 의심과 질문이 들려온다. '이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걸까?'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조급하게 대답했다. 모든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시행착오를 통해 꼭 이걸 배웠으면 한다. 답을 하려 하지 말고 질문을 잊으라.



정말 답을 하지 않아도 될까? 그렇다. 답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답은 삶이 해준다.



틀린 길을 걸어봐야 올바른 길이 올바른 줄 아는 법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아직 틀린 길과 올바른 길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무엇이 올바른지 고민하는 시간은 쓸모없다. 삶이 알아서 알려주길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일단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명심하라. 나는 내면의 목소리가 그대를 항상 올바른 곳으로 이끌 거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번 그대를 그릇된 곳으로 이끌 것이다. 올바른 문에 도달하려면 사람은 우선 틀린 문을 여러 번 두드려봐야 하기 때문이다.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갑자기 올바른 문에 도달해버리면, 그대는 그것이 올바른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합산해보면, 그 어떤 노력도 낭비되는 일은 없다. 모든 노력은 그대의 성장이 궁극적인 정점에 도달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될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주저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잘못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주저하고 두려워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만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말로 잘못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 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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