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공백기를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
가치의 공백기는 말 그대로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지 못한 시기지만,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아직 기존의 가치관을 버렸다기보다 기존의 가치관에 회의감과 의문을 던졌다고 보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기존의 가치관으로 돌아갈 수 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묻다가 다시 기계적으로 공부하고 남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주기로 선택한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사자의 정신에서 다시 낙타의 정신으로 돌아갔다. 기회를 놓쳐 버렸다.
따라서 이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가치관을 창조하기 위해 애쓰는 것 외에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가치관을 창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바로 기존의 가치관 중 일부를 끊어내는 일이다. 남겨야 할 가치관과 버려야 할 가치관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브리지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중요한 단서를 던진다. 브리지스는 전환기의 단계를 종결 → 중립 지대 → 새로운 시작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의 상태를 표현하자면 중립 지대에 있다. 중립 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자유 속에서 혼란스럽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그대로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은 말 그대로 새로운 가치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중립 지대를 터닝포인트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브리지스는 종결이라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터닝포인트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무언가를 끝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낡은 가치관과 불필요한 생각, 행동을 먼저 끊어내야 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게임에 미쳐 살았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고 공부에 미치기 시작하자 게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임이 싫다는 생각보다 게임이 재미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래서 게임을 내 인생에서 완전히 제거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공부가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하자 게임이 다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게임을 완전히 끊어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공부가 게임보다 재밌어서 잠시 우선순위만 바뀌었던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게임을 억제하느라 매번 고생했다.
기존의 가치관을 끊어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신은 끊어냈다고 착각한 그 가치관은 혼란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우리는 미래의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시기를 인내하지 못하면 나랑 맞지 않는 가치관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그 가치관을 선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가치관보다 불확실성이 더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관은 당장 만들 수 없지만 잘못된 가치관을 놓아주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충분한 사색을 거친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서도 나의 길이 아니라고 느낀 순간들이나 일들을 점검해볼 수 있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가치관을 만들어 내거나 하루아침에 가치관을 싹 바꿀 수는 없다. 대신에 삶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잘못된 가치들을 놓아줄 수는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먼저가 아니다. 시작은 다름 아닌 놓아주기다. 종결이다. 터닝포인트를 지혜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전에 기존의 가치관을 종결시켜야 한다.
그럼 이제 드는 의문은 ‘어떤 가치관을 버리고 어떤 가치관을 남겨야 하는가’다.
추락의 경험은 이 의문에 대한 훌륭한 도움을 준다. 추락을 경험해본 사람은 자신이 어떤 가치관을 놓아주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새로운 국면에 왔다는 사실을 곧바로 눈치챈다. 하지만 추락하는 누구나 다 기존의 가치관을 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직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문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아직 그 가치관들이 정확히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용기를 내서 가치관을 종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만약 당장에 ‘오늘부터 이 가치관을 끊어내겠어!”라고 말해도 드라마틱하게 끊어내지는 못한다. 여전히 우리는 습관이 남아있다. 남들이 주입한 의무를 10년 넘게 받아들여 왔는데 이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끊어내겠는가. 충격적인 사건을 겪지 않는 이상 하루아침에 끊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끊어내겠다고 선언할 수는 있다. 선언은 분명한 시작점이다.
사자라고 다 같은 사자가 아니다. 주어진 자유와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는 천차만별이다. 기존의 가치관을 끊어낼 줄 아는 사자인가, 아니면 낡은 가치관에 자꾸만 눈독을 들이는 사자인가. 이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가끔은 기존의 가치관을 따르라는 유혹에 굴복하는 순간도 있다. 너무 힘들어서 잠시 추락을 외면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시기도 있다. 그렇게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다시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보겠노라 선언할 수 있다. 일단 선언을 한다면 우리는 잠시 유혹에 굴복하더라도 금방 돌아올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 모습과 인간의 본성이라 일컫는 것들은 적지 않은 경우에 산업혁명 이후에 창조된 것으로,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인간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인간 본성이 사실은 지금 시대가 만들어 낸 창조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를 벗어나 개개인의 역사를 보았을 때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역시 20대의 경우 2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금의 가치관이 설계되었는가. 창조되고 설계된 것을 모조리 찾아내고 나의 진짜 본성을 찾기 위해 애써보자.
무엇을 해야 할지 묻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나에게 맞는 가치관을 원한다는 신호다. 따라서 우리는 신호가 왔을 때 기존의 가치관을 점검해야 한다.
이제는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무수하게 던져보자. 우리가 찾는 바로 그 ‘무엇’이 감이 올 때까지 조급해하지 말고 살아보자. 새로운 질문이 찾아올 때까지 더 경험하고 사색해보자. 기간을 정해두지 말고 답도 정해두지 말고 일단 살아나가자. 우리가 찾는 ‘무엇’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다. 자신만이 알아낼 수 있다. 무엇을 찾아내는 방법 역시 각자만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은 우리가 문제를 만들었을 때와 동일한 수준의 사고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 같은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의 단계에 왔다.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이다. 내면의 혁명이다.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인생은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낡은 사고방식을 점검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들여와야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내 진실된 가치관과 본성을 덮고 있는 장애물 같은 사고방식들을 발견하고 전환하라. 더 이상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우리의 인생을 감당하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글은 무언가를 제시하기보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하고 싶었다. 그리고 독자들이 모르는 잠재적인 능력을 알려주고 싶었다. 즉, 나는 독자들을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었고 그것을 알아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줄 수 없다. 나는 지금 시기를 더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했고 그 이후에 어떻게 길을 발견할지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앞으로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는지는 내가 알려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찾은 대답은 나의 대답이고 독자 각자가 찾는 대답은 각자의 대답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스스로 대답해가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꽁꽁 숨겨 놓았던 목소리는 무엇인지 찾거나 앞으로 내 가치관을 발견하기 위해 세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판단력을 기르고 ‘나’를 발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심하고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지 알려줄 수 없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조언해주는 일은 항상 나에게 딜레마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하지만 만약 내가 주제넘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준다면 그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다. 그 방법은 바로 자전적인 이야기다. 앞으로 나는 내가 어떤 생각과 경험을 거치고 태어났는지 소개할 예정이다. 내가 들려줄 새로운 사고방식과 지혜는 모조리 나의 대답이다. 나는 내가 믿는 나의 잠정적 정답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따라서 내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 스스로의 경험을 떠올렸으면 하는 바다.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을 떠올리고 곱씹어보는 시간에 나의 주장과 근거가 좋은 참고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