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알까?

by 보로미의 김정훈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되었을까? 만약 그 패턴을 알면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줄 수 있는 지도가 있다고 믿었을 때는 이런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커리어에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 역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고 뭐라도 해야 뭘 할지 알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 새로운 사실은 또 나에게 말한다. ‘모두가 다 우연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됐어.’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학 심리학 교수 존 크럼볼츠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커리어 형성의 배경은 약 80%가 우연이었다. 즉 커리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상치 못한 우연에 의해 형성되며 운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커리어는 알고 나서 시작한 게 아니고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차이는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느냐 아니냐하는 ‘사고방식’의 차이였다. 왜냐하면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하던 일만 붙들고 있거나 아예 방구석에 갇혀 버리면 우연한 기회를 잡아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친구들은 자신만의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항상 어떤 전공을 선택하거나 뭘 준비하려고 해도 나처럼 ‘뭘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길로 나아갔다. 나는 선택조차 하지 못하고 선택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미 꿈이 있는 친구들은 ‘꿈을 얼마나 열심히 좇느냐’의 전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정말 부러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문이 든다. 어릴 때부터 꿈을 정한 친구들은 자신이 그 꿈과 맞을지 어떻게 알고 그것을 자신의 인생 목적으로 정했을까. 나 역시 개그맨을 아직까지 꿈꾸고 있었다면 과연 그 꿈 하나만 믿고 달리는 게 맞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접적으로 우연이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어떤 우연한 사건을 맞닥뜨려 그 꿈을 꾸게 되었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꿈은 의외로 쉽게 생긴다. 단, 쉽게 생기는 만큼 사람들은 꿈을 쉽게 놓는다. 꿈이 없었다고 믿은 나도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꿈이 많았다.


나는 이제 우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우연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회다 싶으면 다 좋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따라서 항상 ‘Yes’를 외치기로 다짐했다. 어차피 나는 아직 영유아이기 때문에 잘 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일이 궁금할 뿐이었다. 저 일은 어떻고, 이 일은 어떻고 재고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모르는 모든 일을 물어보면서 일단 ‘Yes and Go’였다. 어차피 커리어는 우연에 의해 찾아오는데 찾아오는 모든 우연을 일단 Yes하면 될 일이었다. 기회를 잘 잡는 방법은 일단 기회를 잡아 보고 시도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길 일이었다.


아무리 1살이라고 말은 하지만 정말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을까?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게 뭐가 있을까 떠올려봤다. 음, 일단 내일은 없는 것처럼 놀아봤다. 그리고 유치하고 찌질하지만 지독하고 간절하게 사랑도 해봤다. 그리고 하기도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해봤다. 그 외에 여러 가지 활동도 해봤다.


이 중에서 나에게 가장 짧게 임팩트있는 깨달음을 준 경험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기’였다. 내가 내일도 없이 놀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다짐 때문이다. 나는 20살 여름방학이 오기 전에 다짐했다. ‘이렇게 애매하게 학교 수업을 듣고 애매하게 놀 바에 아싸리 놀자.’ 작정했다. 분명 그 날은 시험지 절반 이상을 공란으로 남겨두고 온 길이었다. 그 전날 시험은 아예 빈칸으로 시험지를 제출했다. 백지로 제출하기는 눈치가 보여서 누군가 제출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 학생이 제출하고 나가자마자 잽싸게 일어나 교수님에게 공백의 시험지를 제출했다. 교수님은 나에게 “방학 잘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감사합니다. 교수님”하고 대답하며 강의실을 나왔는데 그렇게 머쓱할 수가 없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학생이어서 죄송합니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왔다.


하여튼 그 뒤로 끝장나게 놀았다. 물론 샤프를 안 쓰고 볼펜이나 노트북을 쓴 탓도 있겠지만 나는 학교에 입학한 주에 넣은 샤프심 하나를 다음 해 5월까지 다 쓰지 못했다. 그리고 정말 끝장나게 놀고 입대를 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내가 노는 것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과거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당시에 놀면서 행복했던 그 기억이 나에게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다가왔다. 내 성격상 마냥 놀기만 하는 게 행복을 가져다줄지는 몰라도 나에게 공허함을 더 많이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 얻은 행복은 그 당시에 느끼는 행복에 비해 부질없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재밌게 놀 때는 몰랐다. 다 놀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깨달았다. 다 썩어가는 나무를 보며 근무를 서고 있을 때야 갑자기 깨달았다.


사랑도 나에게 좋은 깨달음을 주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흘끔 보고 첫눈에 반한 사람에게 인생을 걸 수 있느냐고 물으면 과연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만약 정말 첫눈에 반해서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해도 막상 만나면 안 맞을지도 모른다. 첫인상이 좋더라도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같이 시간을 보내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면 그때는 인생을 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변했을까? 첫 번째,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두 번째, 모든 것이 변했다.


일도 다르지 않다. 나는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하지만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고 사랑을 지독하게 해본 덕분에 알 수 있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내가 인생을 바쳐서 기꺼이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어떤 사상’은 마치 사랑과도 같다. 만나자마자 그 일이 내 인생을 바쳐서 기꺼이 살고 죽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 사랑에 빠져봐야 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봐야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그렇게 두려운 게 많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 ‘커리어 형성은 우연히 찾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스레 자신감이 생겼다. 한때는 누군가 나에게 준 기회를 쉽게 걷어 찼지만 이제는 찾아오는 기회를 다 시도해보기로 했다. 비록 쓸모가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도 그 일이 나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어떤 일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문제 없었다.


그리고 하나의 믿음이 있었다. ‘끝까지 가면 얻는 게 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일들은 모두 끝까지 간 일들이었다. 죽을 듯이 게임하고 미친 듯이 공부도 해보고, 지겹도록 놀아보니 그 일이 아무리 나에게 맞지 않았어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심지어 끝도 없이 추락한 경험은 보다 깊은 지혜를 주었다. 군대에서 읽은 어려운 책들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2년간의 고통스러운 경험 덕분임을 읽을 때마다 항상 느꼈다. 내가 삶의 의미를 잃고 주저앉은 고통의 순간들은 훗날 ‘빅터 프랭클’의 어려운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유치하고 투박하게 사랑한 경험은 나중에 인간과 사랑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남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남의 길을 걸어온 순간들은 모두 주체적 인생과 자발성에 관련된 모든 책과 구절들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뿐만 아니라 내가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맞게 해준 것도 모두 고통의 경험이었으며 날 더 개선할 수 있게 도와준 경험도 일이 순조롭게 풀린 순간들이 아니라 지독한 고통의 경험들이었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들다보니 심지어 나는 ‘만약 내가 1년 더 지독한 고통을 겪었다면 얼마나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라며 아쉬워했었다.


내게 찾아오는 기회가 기회인지 아닌지 나는 몰랐다. 나중에 가서야 모든 순간이 기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찾아온 우연이 기회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될 터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며 느낀 바에 따르면 모든 순간이 기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이 순간도 언젠가 기회였음을 눈치채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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