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다

by 보로미의 김정훈

어떤 진리에도 머물지 마라.

그것을 다만 한여름밤을 지낼 천막으로 여기고

그곳에 집을 짓지 말라.

왜냐하면 그 집이 당신의 무덤이 될 테니까.

벨포 경, ‘진리에 대하여’ 中 일부



나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단 하나의 정답을 찾으러 다녔다. 그 답만 찾는다면 나는 앞으로 영원히 행복하고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정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실 물론 이 믿음은 의식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정답을 찾으면 앞으로 술술 풀릴 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나의 무의식에는 ‘내가 모르는 바로 그 진리를 얻어낸다면 난 영원히 행복할 거야’가 숨어 있었다.


학생 때도 그랬다. 성공만 한다면 나는 영원히 행복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나의 무의식적인 성공의 정의는 대학 입학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정의한 성공에 도달하자 내가 마주한 건 낭떠러지였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대학을 성공으로 정의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모두 무의식적인 믿음이었다.


항상 내 무의식을 찾아야 한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찾아야 그것을 끊어낼 수 있다. 무의식을 찾기 위해서는 항상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여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나는 한 권의 책을 읽다가 내가 ‘완벽한’ 정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완벽한 가치관은 없다는 지혜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의 가치관을 발견하고 믿어야 하는가? 어려웠다. 정답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나는 정답에 집착해서 종종 답을 이미 정해놓고 그 정답을 옹호하기 위한 근거만을 찾아다녔다. 그러니 아무리 다양한 내용을 담은 책을 읽어도 내가 미리 정해둔 답에 대한 근거만 눈에 보였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마치 성벽을 쌓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정답을 일단 정하지 않아야 했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해서는 손을 놓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저 쉬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전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나타날 때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한순간에 부정 받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여간 복잡할 수가 없었다.


이런 순간들을 많이 겪고, 또 과거를 ‘스토리텔링’ 해보며 나는 일단 내가 지금까지 내린 대답을 믿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 그 대답을 잠정적인 결론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내 가치관과 신념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단 잠정적인 결론이 있어야 그 이후에 찾는 답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겼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내 최선의 생각이다. 그리고 더 좋은 답이 나올 때 과감하게 이전의 대답을 치워야 한다. 물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고 가장 우선적으로 나의 ‘사고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고방식을 가장 먼저 바꿔야 한다는 지혜는 바야흐로 동기부여 영상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동기부여 영상을 자주 봤었다. 틈만 나면 동기부여 영상을 보면서 ‘이번엔 진짜 제대로 살아봐야지’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들해졌다. 몇 번 영상이 시키는 대로 행동을 바꾸기도 해봤지만 다시 원래 행동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끔찍하게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믿음을 깨준 건 다름 아닌 철학책이었다. 내가 초반에 읽은 철학책은 아주 따분하고 어려운 단어로 이야기하는 책들이 아니었다. 철학자가 쓴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자기계발서인 듯 철학서인 듯 그사이에 어딘가에 머무르는 듯한 책이었다. 나는 자기계발서나 동기부여 영상을 아무리 봐도 내 행동은 변하지 않았는데 철학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점점 내 주관이 생기고 사고방식이 변하면서 행동이 저절로 바뀌는 경험을 겪었다. 철학책은 그 어떤 동기부여 영상보다 나에게 더 실질적인 동기부여를 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철학이 나의 무엇을 바꿨을까 고민해보았고 그것은 ‘사고방식’이었다.


만약 내가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고 행동도 바뀌지 않았다면 여전히 20살의 나처럼 방황만 했을 것이다. 즉, 20살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으면 나는 죽을 때까지 뭘 해야 할지 모를 위기에 처한 불쌍한 소설 속 주인공이었다. 사고방식을 먼저 바꾸면 태도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하면 무의식중에 ‘이건 틀려’라는 생각을 했다. 틀리다고 결론 내려버린 일은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니 나는 항상 어떤 우연한 기회를 얻을래야 얻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찾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인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없었다. 나는 이 당시 무엇을 해야 할지 찾기 위해서라면 어떤 기회가 왔을 때 ‘Yes’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막상 ‘Yes’ 외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며칠 안 가서 또다시 이건 틀리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폐쇄적인 사고방식과 조급함을 가지고 있었다.


정답을 일찍 결론 내리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알기 위해서 중학생 때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부모님은 항상 방학이 되면 나에게 책 좀 읽으라고 그렇게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책은 따분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고등학교에 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해야 했지만 나는 여전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공부는 영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시내에 있는 학교도 아니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하라는 공부만 해도 중위권은 충분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행평가 기간이었다. 국어 수행평가 항목 중에 ‘도서관에서 책 10권 빌리기’가 있었다. 한 번도 책을 빌려본 적이 없는 나와 친구들은 며칠 뒤에 다 같이 도서관에 갔다. 한 번에 다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책을 골랐다. 어차피 일주일 뒤에 다 반납할 책이었지만 기왕이면 제목이 멋있는 책으로 빌리고 싶었다. 일단 해리포터 시리즈를 두 권 정도 빌렸다. 3권 정도 더 물색하기 위해 책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내 눈을 사로잡는 제목이 있었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였다. 멋지다. 괜히 흥미로웠다. 나는 곧바로 그 책을 들고 다녔다. 제목이 있어 보이니까 괜히 옆구리에 찌르고 다녔다.


그렇게 들고 다니다가 나는 책을 열어 보았다. 책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이야기였는데 사실 아무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평생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그 책에 몰입했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내 감정과 학교 분위기다. 그때는 분명 과학 시간이었다. 과학 시간이 되기 전 점심시간에 나는 책을 펼쳤고 순식간에 책에 빠졌다. 과학 시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다시 책을 펼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아마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 세계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설렘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분명한 사실은 그 책의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책이 내 인생을 바꾸어 줬다는 것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본 내 친구가 자기도 요즘 책에 관심이 많다며 이 책 저 책을 추천해줬고 나는 그 책도 모두 섭렵했다. 도서관에 가서 ‘자기계발서’라고 칭하는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나는 마치 성공한 느낌을 받았고 나도 책 속의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성공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선택한 성공 방법은 바로 ‘공부’였다. 왜 공부였냐고? 내가 아는 성공하는 방법은 공부 외에 없었다. 어른들이 항상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지 않은가.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였고 나는 그때부터 ‘능동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가 성공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꽤나 성급한 결론이었다. 학원을 끊고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공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시험과 주변의 입김에 휩쓸려 금세 입시를 위한 공부가 되었다. ‘대학 = 성공’ 공식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분명히 성공을 위해 시작한 길에서 어느새 내 목표는 대학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보다 무서운 일이 있을까? 만약 그때의 내가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정답을 일찍 결론 내리지 않고 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공부가 내 미래를 책임질 유일한 ‘정답’이었다.


나중에 대학교에 와서야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를 깨달았다. 공부가 성공의 전부라고 믿었던 나였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학생들과 직장인 대다수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라는 회의감을 피하려는 이유는 자신의 길이 분명히 내 미래를 책임질 완벽한 정답이라고 ‘무의식’중에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대답은 절대 고정적인 특성을 갖지 않는다. 어떤 직업을 정하고 그 직업에 몰두하겠다는 답이 아니다. 과정에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답이 나오면 또 다른 답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의 연속이다. 안주하지 말고 확정 짓지 말자. 첫 여행지가 마음에 든다고 거기에 눌러 붙어 살면 다른 여행지는 경험할 기회도 얻지 못한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자. 그곳이 좋든 싫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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