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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Mar 20. 2023

상훈이에게 보내는 글

상훈아 너의 사려 깊은 피드백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너는 주위 사람들 말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시대에서, 의심과 불안을 이겨내고 내가 일에 집중하고 정진할 수 있었던 방법과 깨달음이 책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지. 그래서 나도 2일간 계속 답을 고민해봤다. 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런 한편 나는 아직 내가 땅을 뚫고 올라오지 못한 대나무라고 생각한다. 대나무는 5년 동안 땅 밖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땅에서 나오고 6주 만에 30미터로 올라온다. 나는 요즘 내 일에 온전히 헌신하며 땅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정말 제대로 더 ‘전념’하고 ‘헌신’하고 ‘정진’하고 ‘집중’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주위의 목소리에 흔들리는 사람을 위해서도 썼지만, 궁극적으론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자 하는지 나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썼다. 그래도 편지 형식이 좋을 거 같으니 23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하겠다. 

23살의 정훈아. 너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겠지. 하고 싶은 것도 애매한데 확신도 없는. 쉽게 말해 “내가 잘못된 사다리를 고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하고 있을 거야.

너의 모습은 마치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친구들은 하나씩 재밌는 영화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는데, 나만 아직도 볼 영화를 찾고 있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니. 너는 결국 1시간이나 영화만 찾다가 결국 지쳐 쓰러지겠지. 하지만 그럴 때 사실 필요한 건 적당히 재밌어 보이는 영화 한 편을 무작정 선택하고 보는 거란다. 처음엔 ‘내가 맞는 선택을 한 걸까?’하는 의심이 들겠지. 근데 신기하게도 재미가 붙기 시작하면 의심과 불안은 사라지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단다.

가끔은 1시간이 지나도 몰입이 되지 않는 영화들이 있어. 그런 영화는 과감하게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용기도 필요한 법이야. 그리고 새로운 영화를 찾으면 되지. 그럼 놀랍게도 1시간 동안 본 ‘잘못 선택한 영화 덕분에’ 너가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지 알게 된단다. 또한, 이런 지혜도 생기지. 처음부터 ‘보기 싫은 영화’를 제거 하면서 선택지를 좁히고 시작했다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을 때, 다음에 볼 영화가 얼마나 명확할지! 그래. 사람은 무릇 시작하기 전에 하기 싫은 걸 먼저 정해야 하는 법이란다. 선택지를 탐색하는 시기엔,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무엇을 하기 싫은지 정하는 것이 조금 더 중요하다.

너는 미래에 지금 한 선택을 후회할까봐 시작하지 못하고 있지. 하지만 너는 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아? 20살, 21살의 고통과 방황이 지금의 널 만들었다는 생각. 하지만 그 방황은 너무 아팠어. 분명 아팠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내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뻔뻔스러운 인간이 되었지? 그래, 지금 너가 마주하는 모든 불안과 고통, 의심과 걱정은 훗날 다 도움이 될 거야. 마치 지금의 너처럼. 그렇게 믿으면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질 거야.

그래도 못믿겠다면,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해줄게. 인간은 ‘선택 지지 편향’을 가지고 있다. 이 인지 편향은 쉽게 말해, 옛날의 내가 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해. 너도 결국 인간이니까 분명 너의 선택이 맞다고 합리화할 거다. 너가 오래 고민해서 산 옷을 누가 별로라고 하면 넌 뭐라고 할 거니. 아마 갖은 이유를 대서 반박하지 않겠어? 너의 인생 선택도 다를 게 하나 없다.

그러니 쫄지 말아라. 어차피 너가 한 선택은 모두 너의 귀한 자산이 될테니. 그래, 그럼 이쯤에서 너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정훈아. 너의 시기는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너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이 말을 반드시 명심해라.

이 말이 무슨 뜻이겠느냐. 결국 너는 중간에 결정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만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이 훗날 옳았다고 믿을 거란 말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끝까지 가보라는 말을 하는 거고, 진짜 실패란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다음으로 어떻게 주위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길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보자.

먼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길로 갈 수가 없어.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거야. 요즘 시대에서 책임감의 중요성은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기에, 나의 행동이나 선택이 많은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인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이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야.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사람들은 70년동안 서로에게 헌신한 노부부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닮고 싶어해. 하나의 일에 완전히 몰두한 장인 정신에 감명받기도 하고, 나라가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운동한 사람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노력하지.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건 바로 그런 거다.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강한 확신. 그럼 불안이나 질투가 3초간 찾아와도, 본능이 잠시 찾아온 거라 생각하고 만단다. 그럼 곧바로 사라지지.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확신은 어디서 나오느냐. 나는 사명이 있어. 그리고 난 ‘진짜 사명’이란 내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내게 쥐어주는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20살부터 천천히 지금의 길로 떠밀려왔어. 처음엔 내가 선택한 길이라 생각해서 자존심을 세웠는데, 사명의 길은 그랬다가는 모든 척추가 다 부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왜냐하면 사명의 책임감은 너무 무겁기 때문이야. 사명의 길은 겸손해야 해.

여튼, 나는 겸손하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사명에 행동으로서 대답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사명이 날 끌어 당기고 있어. 인생과 사명이 나라는 사람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달성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면 너는 그것을 믿을 수 있겠니? 아주 가끔, 나는 그런 느낌을 받는단다. 너도 그런 사명을 찾을 때까지 안주하지 마라.

내가 배운 한 가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서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오히려 그 목소리와 멀어지고, 무언가에 애정을 갖기 시작하면 저절로 목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헌데 사람들은 완전히 반대로 생각하고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나를 찾으려고 해. 아무도 보물을 숨겨 놓지 않은 무인도에서 황금 상자를 찾는 머저리 해적처럼 말이야. 너와 아주 동일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거지. 이런데도 너라면 다른 길을 가고 싶겠니? 지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도와줄 수 있는 내 경험이 분명히 있는데.

그리고 ‘가짜’ 자유 속에 있으면 남들의 모습을 보면서 쉽게 흔들릴 수 있어. SNS만 봐도 나빼고 다 멋지게 인생을 사는 거 같잖니.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어.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만 말하자면 나는 진정한 자유가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구속을 찾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 나는 그저 올바른 구속을 찾고 그 안에 묶이기로 결심했어.

이번에 친구랑 이런 얘기를 했었어. 군대를 가기 전에는 자취방 책상 앞에 단 한번도 앉아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침대를 치워버리고 공부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지. 이 차이가 도대체 뭘까하는 거야. 나는 그것이 내가 사명에 날 던져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위대한 책을 쓰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그 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배웠고,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그 사례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배웠지. 그리고 위대한 교사는 학생 마음에 불을 지피는 교사라는 것도 배웠어. 그러려면 먼저 내가 ‘불’을 들고 있어야 하지 않겠니?

난 아직도 군대에서 신임 분대장님이 상담 중에 해준 말을 잊지 않고 있단다. 분대장님은 내 안에서 활활 타고 있는 불꽃을 절대 끄지 말고 아주 작은 불씨라도 계속 살려 놓아야 한다고 말했었어. 왜냐하면 불이 아예 꺼져버리면 다시 불씨를 살리는 데 너무 큰 힘이 들기 때문이야. 반대로 작은 불씨는 너가 키우려고만 하면 금방 거대한 불이 되지. 그 말 덕분에 난 아직까지 22살에 힘들게 지핀 불꽃을 절대 끄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 너도 절대 불씨가 꺼지지 않게 조심해. 이 말을 반드시 명심해라.


그럼 작은 불씨마저 꺼져 버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이런 말 들어봤니? “얇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탈 때는 속도가 빠를수록 안전하다.” 지금 너의 일상이 얇은 얼음처럼 위태롭고 ‘피상적’이라면 빠르게 움직여야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야. 어린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20대 후반엔 그런 사람이 산더미에 천지삧까리다. 지금 너가 잠깐 질투한 그 ‘취업한 사람들’중 몇몇은 여전히 계속 다양한 도전을 하고 빠르게 포지션을 전환하면서 ‘생존’하고 있어. 마치 얇은 얼음 위를 스케이팅하는 사람처럼 말이야. 잠깐이라도 움직임을 멈추면 거대한 의심과 자괴감이 찾아올지도 모르거든.

그런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든, 새로움만 추구하게 돼. 그리고 매번 결정은 그것이 재미있냐, 지루하냐로 결정하지. 다른 선택지에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는 여행자의 삶을 살아. 더 쉽게 말하자면, 인생을 어떤 경험의 가능성 정도로 보고, 무언가를 완수해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게 된다는 말이야.

이런 삶도 처음엔 좋아. 20대 초반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나중에 시간을 다 허비한 30대가 될 때까지 이렇게 살다보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될 거다. 지나친 새로움 추구와 그에 따른 즐거움 중독은 오히려 극단적인 따분함을 낳게 돼. 결정적으론 아무리 탐색해도 내 일을 찾지 못해서 결정 장애 상태에 이른단다. 그리고 너의 정체성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다양한 경험의 서랍을 뒤척이며 ‘나는 누구지?’하며 공허한 시간을 보낼 거야.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발견할 리가 없단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제대로 축적하고 정진해본 경험이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까지 집중해서 정진한 게 없으면 당연히 뭐가 없으니,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때 다시 시작하면 된다. 경험이 없으면 이제부터 만들어야지, 뭐 방법이 있을까? ‘나’에 대한 이해와 나에게 맞는 일이 하늘에서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 말고, 어느 날 아침 머리 위에서 전구가 켜질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지. 그리고 그게 맞는 접근이란다. 좋아하는 일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야. 이 말을 반드시 명심해라.

그러니, 인생의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 애정을 갖고 모든 것을 쏟아보는 연습을 해봐. 오늘 저녁 약속을 온 진심을 다해서 나가보는 거야. 아니면 하루 5분이라도 내 의지로 운동을 해봐. 그리고 5분 운동을 한달만 지속해봐. 아마 아주 작은 만큼 쉽고 빠르게 그것에 몰두하게 될 거야. 그럼 다른 것도 시도를 해봐. 그렇게 너는 산만한 정신 상태에서 무언가에 헌신하는 정신 상태로 옮길 수 있어. 이 생각은 믿어도 좋아. 내가 5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한, 아주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니까 말이야. 사람들은 100KG 무게의 덤벨을 들기 위해선 3KG 덤벨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막상 자신의 진로의 영역에선 바로 바로 100KG 무게로 넘어가려는 거처럼 행동해.

나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헌신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 전의 인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 맛을 알았으면 좋겠어. 처음엔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중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에 대한 뿌듯함이 너무나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사람들은 무엇 하나를 정하고 달려가기 시작하면 불안과 의심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큰 착각이야. 아직 무언가에 온전히 헌신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바다에 몸을 적시기 전에 해변에선, ‘머리카락이 젖으면 어쩌나, 다 놀고 집까진 어떻게 가나’ 걱정하지만, 막상 바다에 빠지면 아무런 잡념 없이 물에 온전히 나를 맡기잖니. 똑같다고 생각해봐. 그러니 지금 당장 아주 조금의 확신이나 흥미, 애정를 갖고 있는 일이 있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네 몸을 완전히 바다에 던져 넣어라. 아마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다이빙이 될 거다. 마지막으로, 잘 하고 있으니까 조급해 하지만 말아라. 그대로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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