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준비하며
20살에 인상 깊게 읽은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가수 윤종신의 산문집입니다. 지금이야 책을 항상 끼고 다닐 정도로 사랑하지만, 그 당시에 저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책은 출간한 지 얼마 안 돼 학교 도서관 로비에 '핫북'코너에 진열됐고 우연히 제 손에 오게 되었습니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제 마음을 울려서 언젠가 이 책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5년이 지나 2023년. 이끌리듯 그 책이 생각나서 도서관에 갔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울림은 없었습니다. 스무 살엔 아마 사랑과 이별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얻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책을 덮으려고 할 때, 그때는 읽은 기억이 없는데, 지금은 제 마음을 두 번 울리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꿈을 가지라는 주변의 강요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겪어 보지도 않고 떠밀리듯 꿈을 결정해 버리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 수는 없거든요. 탐색과 경험과 시행착오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죠. 꿈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된 다음에, 내가 들어선 이 길에 확신이 생긴 다음에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中
그때는 왜 이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내가 그토록 찾던 답이었는데. 어쩌면 사실 읽으면서 이 말이 답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다음에 정해도 된다는 말이 그저 속 편한 위로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예술가가 하는 읽기 좋은 소리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의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제게 사람들은 묻습니다.
"앞으로 뭘 할 생각이야?"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하고 철없는 대답 같지만, 이 한 문장을 말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린 듯합니다.
5년 전에도 물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럼 사람들은 또다시 묻습니다.
'5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거야?'
변화는... 제 안에 있습니다. 변화는 행동과 진로에 있는 게 아니라 제 내면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변했기에 제 생각과 행동도 바뀌었습니다. 꿈과 목표는 오히려 나를 방해하는 족쇄가 되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목표가 없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책임감을 요한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공허함과 불안은 사라지고 충만함과 공감이 생겼습니다.
치열하게 아파보니 이제는 보입니다. 5년 전의 제가 겪은 고민과 공허함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철학자가 말하길,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행동할 줄 압니다. 저는 제가 배운 것을 행동으로 공유하고 공감하려 합니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여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20살의 나 하나만큼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쓰자고 다짐합니다. 꿈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매일같이 그걸 찾는 이에게, 꿈은 없어도 괜찮다고 설득하고 새로운 대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자고 다짐합니다. 단 한 명에게라도 진심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부족한 솜씨에도 이렇게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해합니다.
'왜 하필 네가 해야 하는데?'
모두가 "어릴 땐 그런 시기가 있는 거지"하고 넘기는데, 왜 너만 그러냐고 묻습니다.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구절을 빌려 답하겠습니다.
"나 혼자 빠져나온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어. 일단 탈출 계획을 세우고 다른 죄수들에게도 자유를 안겨준 다음에 간수를 쏴버리고 감옥을 불태워버리는 거야." - <더 시스템>